매일신문

주간데스크-아생연후...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는 옛말은 원래 여자의 차가운 변심을 뜻하는 말. 이도령 몽룡이를 기다리던 일편단심 춘향이가 서방님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변사또 품에 뛰어들었다면 그게 바로 고무신거꾸로 신는 사태다.

작금의 정치권에 고무신 거꾸로 신는 사태가 벌어질 조짐이다. 이당에서 저당으로, 주로 야당에서여당으로, 또는 이지역구에서 저지역구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며 팔자를 고쳐볼 요량들이다.

고무신 거꾸로 신는 정치인을 우리는 흔히 '보따리장수'라고 부른다. 정치인의 처신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빗댄 표현이다. 고무신 거꾸로 신는 사유인즉 한결같다. "지역발전을 위해서" "국가장래를 위한 대승적 결단...." 등등의 듣기 민망한 말씀들인데, 솔직히 바둑얘기로 견주면 "아생연후(我生然後)"가 정답일 터이다.

문제는 고무신 거꾸로 신어서 성공률이 어느정도냐는 것인데, 확률은 별로 없다. 군위출신의 전의원 김현규씨(3선)는 인품도 능력도 넉넉한 분이지만 지역구를 '군위-대구-마포-군위-찍고...'무슨노래가락처럼 돌고돌다 삼세판을 내리 떨어졌다. 지역구 2선의 정창화의원(의성)도 한번 떨어졌으면 그자리서 와신상담할 일이지 제잘난 것만 믿고 대구로 옮겼다가 두차례 연속 쓴잔을 마셨다.다행히 지난 재선에선 고향으로 되돌아가 읍소끝에 당선되긴 했지만.

정치7단 이기택전총재의 보따리경력도 그의 정치역정에 큰 흠으로 남았다. 그의 정치적 뿌리는 5선을 안겨준 부산동래와 해운대. 청와대 문전에서 YS와의 이상한 결별이후 용꼬리보단 차라리계두(鷄頭)를 택했던 그도 금배지없는 소수야당총재의 설움이 몸서리났던지 물색없이 포항북 보선에 출마, TJ의 화려한 복귀를 도와주는 정치적 대악수(大惡手)를 두고 말았다. 이번엔 다시 동래로 간다던가, 기장으로 간다던가.... 지역구 바꾸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정당을 바꾸는 일이랴.

포항의 박기환시장이 한나라에서 자민련으로 말을 갈아탔다. 역시 "지역발전을 위해서..."가 명분이지만 아무래도 야당후보로서 TJ와의 대리전이 겁났던 모양이고 박총재 또한 두박(二朴)결투의상처가 두려웠던 모양이다. 박빙의 한판승부를 기대했던 포항시민들은 주먹없는 권투장에서 방석을 날리는 처지가 돼버렸다.

잇따라 구미의 박세직의원도 보따리를 쌌고 구미.경주 시장도 흔들흔들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자민련낚시대회는 마감일이 없다. 내후년 총선땐 포항바닥에서 3선한 이상득의원(한나라원내총무)인들 자민련 안간다는 보장이 없다. '아생연후'이기 때문에.... 기실 이의근경북지사도 4.2경북보선에서 한나라가 연승했기 망정이지 두곳중 자민련이 1승이라고 건졌다면 그의 고민은 지금도 '계속중'이었을 것이다.

일련의 정치적 도미노현상을 보면서 한토막 감상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 정치하는 사람들의 탈당.변신의 '자기합리화'가 여전히 기가 막힌다는 사실이다. 총칼로 집권했다 망한 이땅의 옛권력자들도 명분은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서였다.

민주주의란 결과보단 '과정'을, 목적보단 수단을 중시하는 제도다. 정치에서 우리 아이들은 선거와 투표과정이 어떻게 공명하게 진행되는가를 배운다. 그런데 시장.지사 해보겠다는 사람, 국회의원 하겠다는 사람들이 끝없는 자기합리화로 왔다갔다 한다면 우선 자기집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아이들이 커서 똑같은 합리화와 변명을 되풀이할 것이란 사실이 참 싫다. 노래방의18번같은 이후진적 정치행태의 리바이벌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갈까말까 망설이는 나는 못난이..." 강건태 〈경북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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