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보다는 '실용'. 실업과 취업대란으로 교육에 거품이 빠지면서 대학선택의 잣대가 변하고 있다. 4년제 대학을 나와야 사회에서 인정받는다는 관념이 부숴지고 있는 것.
전공 불문(不問), 적성 무시, 수능점수는 곧 학과. 이렇게 따낸 '간판'. 그렇지만 대학 문을 나서는 순간 기다리는 것은 절망감 뿐.
경북대 공대 졸업생 이지언씨(23·여). 고3때 자의반 타의반으로 점수에 맞춰 대학을 진학한 터라졸업을 앞두고 초조했다. 취업 공포. 이씨는 자신의 전공과 관계없는 메이크업, 미용학원까지 다닐 정도로 취직에 정성을 쏟았다. 그래도 답이 없었다. 마음을 다잡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 올해 대구보건전문대 안경광학과에 입학했다.
대구의 4년제 대학 모 공과계열 학과는 올해 졸업생 40명 중 취업자가 단 2명. 이들마저 입사시험에 합격했지만 회사에서 부를때까지 대기상태다. 다른 대학, 다른 학과도 사정이 결코 낫지 않다. 대학에서 수많은 대졸자를 쏟아내지만 그들이 갈 곳은 없다.
마지막 선택이 인생궤도 수정. 취업이 잘된다는 전문대 유망학과에 입학하는 학사들이 많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계명전문대 유아교육과 경우 대학·전문대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정원외 입학 전형에서 20명 모집에 지원자가 무려 77명이 몰렸다.
대구보건전문대의 안경광학과에는 16명의 정원외 신입생 중 12명이 학사출신 이다. 물리치료과도신입생 16명 중 학사출신이 7명. 한때 남학생들의 지원이 낮았던 대구교육대학의 올해 남학생 입시경쟁률이 3.7대 1을 기록했다.
인생궤도를 바꾸는데는 '나이'도 걸림돌이 아니다. 불혹(不惑)의 나이인 김정현씨(40)는 올 영남전문대 자동차과 신입생. 지난 86년 외국어대 정외과를 졸업한 김씨는 직장생활을 거쳐 5년전부터아동복 대리점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카센터 경영자가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늦깎이 전문대생이 됐다.
정동원씨(33)가 올해 대구보건전문대에 원서를 냈을 때 학교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미국에서 7년간 유학해 대학·대학원 졸업, 대기업 3년 근무, 현재 사설 유학원 대표…. 정씨의 뜻은 단호했다. 안경광학과를 졸업해 콘택트렌즈점을 경영하는 아버지를 돕고 싶다는 것. "학력과 학벌보다는능력과 자격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게 정씨의 신념이다.
아직 입시위주 교육이 여전하고 수능점수 몇점이 돼야 이런 대학 저런 학과에 합격할 수 있다는잣대가 제시되고 있지만 대학선택 경향에는 '거품 빠지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린다. 〈金敎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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