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우물안의 개구리

장자의 추수편에 보면 우물안의 개구리와 동해의 거북이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물안의 개구리는 거북이가 말하는 바다에 가본 적이 없으므로 그의 말을 듣고도 바다를 이해할 수 없었다.단지 우물안의 편안함만 소리높여 이야기한다. 그래서 좁은 소견으로 고집스러운 사람을 일러 우물안의 개구리같다고 한다.

어떤 의미로는 우리 모두가 우물안의 개구리일 수 있다. 공간적인 한계와 시간적인 한계, 그리고우리 몸이 지니고 있는 한계 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겸손할 것이며 모르고 있는 사람은 오만할 것이다. 알고 있는 사람은 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며 모르는 사람은 알고 있는 것만을 소리높여 외칠 것이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 믿음에 근거해서 사고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 그러나 그 많은 믿음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회의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내가 직접 봤으니까 틀림없고 내가 본 책에는 그렇게 쓰여져 있으니까 틀림없다. 또는 대학교수가 말했으니까 틀림없다는 식의 체험과 지식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때는 천동설이 진실인 때도 있었고 질량과 에너지가 별개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의 진실들이 더이상 진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그래서 우리에게는 사고의 유연성과 배우고자하는 자세가 요청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좁은 울타리속에서 자기만족에 빠져 정체되어 있을 수는 없다. 힘찬 도약으로우물을 뛰어넘어 저 넓은 바다로의 순례를 감행해야 한다. 그래서 바다에 다다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사회는 보다 정신적인 성숙을 이룬 사회로 변모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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