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마닐라의 슬럼가 톤도에서 엔지니어 집안의 10남매중 8번째로 태어난 그는 성장기를산 후안 교외에서 보내다 후에 이 시의 시장직을 16년간 역임했다.
의사인 부인과 결혼, 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60년대에 바람을 피다 아내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부인은 그후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으며 영화배우로서 절정기를 누리고 있던 에스트라다는 그때부터 '문란한' 독신생활을 시작했다.
모두 몇 명인지도 공개되지 않은 그의 사생아들은 어느 누구도 아버지를 게으름뱅이라고 비난한 적이 없다는 것이 에스트라다 본인의 주장이다. 부인과는 그러나 후에 좀 더 '성숙한'다음 화해했다.
1972년 행정부문에서 두드러진 역량을 발휘, 필리핀의 '우수한 젊은이 10명'중 한 명으로 뽑힌 이후 87년 상원의원, 92년 부통령으로 각각 당선돼 정치가로서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일부 인사들은 그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대통령의 독재를 지원한 인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데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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