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5대 전반기 국회결산

15대 전반기 국회가 29일로 막을 내렸다.

법정개원일(96년 6월5일)에 개원식도 열지 못하고 회기를 시작한 15대 국회는 여야간의 힘겨루기로 후반기 원구성조차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회기를 마감하게 됐다. 지난 25일후반기 원구성을 위해 소집된 임시국회는 여당의 불참으로 차기 의장단을 선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전되고 있다. 여당이 지방선거이후 현재 여소야대를 인위적으로 무너뜨린후 후반기 국회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파행으로 시작된 국회가 마지막까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꼴이 된 셈이다.

당초 국회는 15대 총선직후 본회의를 열어 전반기 국회를 개원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야당인국민회의와 자민련측이 선거 부정과 신한국당의 의원 영입에 제동을 걸면서 개원식조차 갖지 못한채 출범했다. 총선직후 1백39석이던 신한국당이 야당의원 영입을 통해 1백51석의 과반의석을 확보한 때문이다. 결국 우여곡절끝에 개원국회 마지막 날에 가까스로 원구성을 했던 15대 국회는 또 그해 12월 신한국당측의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로 또 한차례 파동을 겪게 됐다. 신한국당측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 두 법안의 새벽날치기를 강행하는 바람에 전국적인 파업사태를 불러 오는 등 정국불안을 야기시킨 것이다.

또 15대 전반기 국회는 의원 수난사로도 유명하다. 한보비리사건 관련의원 6명 등 8명의 의원이 구속 등으로 의원직을 상실했으며 지병 및 사고로 사망한 국민회의 조철구(趙澈九), 신기하(辛基夏), 자민련 이병희(李秉禧), 권수창(權秀昌) 한나라당 남평우(南平祐)의원 등 모두24명의 의원이 이래저래 의사당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전반기 국회가 불명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열렸던 한보사건 국정조사특위 활동과 같은해 4월부터 5월까지 22차례에 걸쳐 열렸던 공청회는 정치권의 고질병이던 정경유착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또 초재선의원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의욕적인 의정활동도 돋보였다는 평가다. 이기간중 정기국회 2회, 임시국회 12회 등 모두 14회 집회를 가져 헌정사에서 가장 많은 회의를 열었던 국회로 기록됐다. 또 총8백건의 처리의안 가운데 거의 절반이상을 의원입법으로 처리해 과거 정부입법을 처리하던관행에서 탈피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4월10일부터 15일까지는 의원외교의 꽃으로 불리는 국제의회연맹(IPU) 제97차 총회를 회원국 1백35개국중 1백18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해 국내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했다. 〈李相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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