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남으로 치닫던 산맥도 서서히 끝자락을 보이기 시작한다. 남도의 오지 거창(居昌)에 들어서면 맥이 다시 한번 용트림해 이룬 지리산도 그리 멀지않다.
높고 낮은 산들이 에워싼 땅. 덕유산 줄기가 울이 되어 분지를 이룬다. 신라때까지 거열,거타로 불렸던 거창은 모두 그 한자뜻이 크고 밝은 벌판. 하지만 거창군의 전체 면적중 78%가량이 산지로 시원한 벌판이라고해야 거창읍 정도다. 서북쪽으로 덕유산,전북 무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월봉산,기백산,금원산등 1천5백m안팎의 준령들이 거창과 함양을 가르고 있다.
거창이 산좋고 물좋은 고장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이런 천혜의 자연조건은 역으로 긴 역사의 흐름속에서 많은 눈물을 만들기도 했다. 그 옛날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영토다툼의 전초기지가 된 변방이었고 6·25때는 미처 퇴각하지 못한 인민군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면서 공비토벌에 나선 국군의 무자비한 양민학살로 이곳 신원면이 쑥대밭이되기도 했다.
거창의 대표적 명승지인 위천면 대정리의 수승대(搜勝臺)에도 슬픈 사연이 남아있다. 원래나제(羅濟)의 접경에 위치, 적국으로 떠나는 사신들이 돌아오지 못함을 슬퍼하여 이 바위에올라서서 눈물로 전송한다는 의미에서 수송대(愁送臺)라 불렸다. 하지만 퇴계 이황선생이 사언율시를 남기며 수승으로 고칠 것을 권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땅에 스며있는 서글픈 역사와 함께 강직한 거창사람들의 숨결도 곳곳에 배어있다. 계곡물을 가르며 절경을 이룬 수승대 바로 옆에는 비록 쇠락했지만 문기가 짙게 서려 있는 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 중종때 학자 요수 신권(愼權)선생이 세워 후학들을 양성한 구연(龜淵)서원. 서원입구에 나지막히 서있는 관수루(觀水樓)는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단아한 정취를 내뿜는다. 숱한 풍상을 이겨내고 비틀어진채 누각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에서 거창의진면목을 읽을 수 있다. 금방이라도 바람에 흩어질듯한 흙빛닮은 단청이며 색바랜 기와의고색이 창연하다. 산고수장(山高水長). 서원뜰에는 요수선생의 학문과 덕이 산처럼 높고 물처럼 영원하다는 뜻을 새긴 비가 돌거북등을 타고 우람하게 서 있다.
이같은 선비정신의 맥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거창 유림들의 꿋꿋한 기개에서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다. 80년전 '파리장서(巴里長書)사건'은 거창사람들의 속마음을 단적으로보여준 사건이었다. 3·1운동을 전후해 한국유림대표 1백37명이 연서로 파리평화회의에 한국독립청원서를 보낸 것이 탄로나 많은 유림들이 일제에 의해 박해받은 사건. 거창사람 곽종석(郭鍾錫)이 주도한 이 운동은 수많은 거창출신 인사들이 연서,그 진원지라 할 수 있다.이런 선각자들의 정신이 오늘날 거창을 만들어낸 밑거름임을 부인하기 힘들다.유림들의 높은 학문과 절개만이 거창을 지켜낸 원동력의 전부는 아니다. 남들이 알아주지않는 곳에서 유기며 징,목탁등 전통의 얼을 지키기위해 평생을 바친 거창의 장인들도 한몫했다.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하개금마을. 거창읍에서 합천군쪽으로 80리를 들어가면 3대째 목탁을만들어온 장인 김종성씨(52)를 만난다. 기계가 판을 치는 요즘 세상에 어리석을 정도로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그의 손길에는 그래도 거부할 수 없는 혼이 남아있다. 본시 목탁은 불가의일. 스님들로부터 목탁만드는 법을 배워 업으로 삼아온 김씨 집안은 지난 79년 작고한 선친김사용에 이어 종성·학식(23)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목탁 재목은 남해,여수등지에서 어렵게 구해온 수백년 묵은 살구나무 밑뿌리가 제 격이다.무논에 3년동안 묻어 진을 뺀 재목은 가마솥에 굵은 소금을 넣고 장작불로 하루동안 삶아내야 좀이 치지 않는다. 삶아낸 나무는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3~4개월동안 그늘에서 건조시켜야한다. "제대로 된 목탁재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평균 3년6개월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김종성씨는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견뎌낼 재간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목탁만들기를그만두었다"고 어려움을 설명한다.
이제까지의 과정은 단지 좋은 목탁을 만들기 위한 예비과정일뿐 보다 중요한 작업은 이제부터다. 속파기. 목탁제조기술의 핵심인 속파기는 하루이틀에 완성되지 않는다. 옆에 붙어 배워도 꼬박 5~6년이 걸리는 어려운 공정이다. 속을 깊게 파내면 바가지소리고,엷게 파내면 청아한 소리와 거리가 멀어진다. 그래서 어렵다. 15살때부터 이 기술을 배운 김씨는 30여년동안 손에 잡아온 골칼로 능숙하게 속을 후벼낸다. 속파기가 끝나면 사포질후 입자고운 황토흙을 목탁표면에 곱게 칠해 닦아내고 일곱차례나 들기름을 반복해 발라 비로소 하나의 목탁을 완성해낸다. 손을 놀리지 않고 한달 꼬박 매달려야 완성되는 목탁은 5~6개에 불과해 몇분만에 만들어지는 기계목탁과는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는다.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고 살아가는 물고기처럼 깨어 수행정진하라는 뜻이 담긴 목어(木魚)가 변형된 법구(法具) 목탁. 가슴마저 울리는 청정한 소리로 살아있는 정신을 일깨우는 목탁에서 소백산맥의 또 다른 웅혼한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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