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업농 퇴출 현실화

권장됐던 '기업농'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쌀 등 식량성 전업농은 사정이 나으나, 축산이나특작농 등은 위기가 심각하다.

정부 정책과 돌출 상황:정부는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농축산물 시장 개방이 불가피해지자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대응한다는 방침 아래 90년대 들어 무려 40조원이 넘는 자금을이에 쏟아 부었다. 경부고속철이나 영종도 신공항 등과 비교될 수 없는 당대 최대의 국가적사업 중 하나가 됐던 것.

이 자금 중 상당부분은 논밭·용수시설 등 개량에 투입됐으나, 농장의 대규모화·첨단화에투입된 돈 역시 어마어마하다. 이에 힘입어 농민들도 많은 농기계·설비 구입, 첨단 유리하우스 건설, 축산 대규모화 등에 나섰으며, 소요 자금 중 상당액은 특별융자(국가 정책 융자)등 결국 자부담으로 돌아가는 돈으로 충당됐다.

그러나 워낙 국내 시장 규모가 협소한 한계가 있는 가운데 경제위기 상황까지 닥치자 소비가 급감하고 생산품 값이 폭락, 상황이 아주 나빠져 버린 것이다.

기업농들의 현재 상황:물론 성공한 기업농들도 많다. 그러나 경제위기라는 극한적 상황 때문에 상당수는 주저 앉았다. 김천에서는 작년에 포도 농사 자금으로 지원된 80억원의 상환기일이 도래했으나 포도값 하락 등으로 10여명은 이자도 못갚아 가산 이자까지 물고 있다.구미의 한 영농조합도 8천만원을 못갚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든 몇가지 예 보다 더 많은 것이 소위 '잠재된 폭탄'들이다. 적잖은 기업농들은 "대출금 회수 등 더 나쁜 상황이 도래할지 모른다"며 아예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귀띔하기 조차 꺼리고 있는 것. 그러나 생산품 가격 폭등 등 상황이 극적으로 반전되지 않는 한덮여져 있을 뿐 위기가 해소되지는 못할 터여서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설득력 있다.더욱이 현재 정부가 2·3차 산업의 위기성만 집중 부각함으로써 1차산업의 이같은 위기가상대적으로 묻히는 면도 있어 보인다.

농축협의 관리 상황:포항 10개 농협들의 현재 여신은 7만6천건에 4천7백56억원 가량. 그 중10%인 6천7백건 가량이 연체 채권이다. 총 채권의 1% 50억원 가량에 대해서는 압류·소송등 절차가 진행되고 있고, 전반적으로는 올 9월까지를 채권 정리기간으로 정해 회수·확보작업을 하고 있다. 고령농협들도 작년 일년간 1백50건 3억5천만원 정도를 강제회수 조치했으나, 올해는 대상이 벌써 1백30건 4억원을 넘었다. 청도에서는 압류 등 강제회수 조치 건수가 작년엔 25건이었으나 올해는 이미 80건에 달했다. 문경에서는 일년짜리 영농자금 조차90건 7억원이 회수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강제회수 대출은 90% 정도가 일반자금들이다. 농업 정책자금에 대해서는 정부가 3개월씩 3차례나 회수기간을 연장해 주고 있기 때문. 또 지난 2월 중단됐던 농협 대출이지난 20일부터 재개돼, 빚을 내 빚을 갚는 '승환'이 가능해짐으로써 상당액의 부실채권이 물밑으로 잠수해 우선은 모습을 감추기도 했다.

조합원 상대 강제회수가 엄두내기 쉽잖은 것도 부실 대출을 일단 잠수토록 하는데 일조하고있다고 농협 관계자들은 말했다.

앞으로의 전망:그러나 악성 대출을 계속 두고만 볼 수는 없다는 것 또한 농·축협측 입장이다. 실농가(失農家)에 대한 강제 회수가 먼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9월 이후엔 이와 관련한 조치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관계자가 말했다. 포항·영주·봉화 등 농협 관계자들이 그런 의향을 비쳤으며, 청도에선 8∼9월 쯤이면 보증 때문에 연쇄 현상까지 불가피할것으로 전망됐다.

정책자금과 관련해서도 영천·안동 등 농협관계자는 "소·돼지·우유 등 값이 반등하기 어려워 보이는 현재로서는 상황이 무척 어렵다" "3차례나 상환을 연기해 줌으로써 농민들의부담이 누적돼 또다른 어려움 가중 요인이 되고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 당국도 경영 부실화된 영농조합 법인 등을 가려내 퇴출시킬 계획이다. 어차피 '정리'절차가 머잖아 개시될 전망인 것. 의성·군위 등에서는 대상 법인이 이미 선별된 것으로 보이고, 구미에서는 융자·지원 대상인 농민후계자 지정 자체에 문제가 내포돼 있다고 보고그쪽까지 정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농업인에 대한 '구조조정'이 연내에 진행되고, 농장에 대한 '워크아웃'이 추진되며, 부채 탕감 등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올 연말쯤에는 농업계에 회오리가 불가피하리라는것이 관계자들의 걱정이다. 이것은 90년대 들어 엄청난 힘을 쏟아 온 우리 농업 경쟁력 강화 정책이 휘청거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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