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신탕 해외공수작전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 서울에서 날아온 747보잉기 한대가 활주로로 미끌 어져 들어온다. 공항 로비구석에 몸집이 큰 중년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긴장해 서있다. 잠시후 손에손에 보따리를 든 아줌마 부대들이 세관출구를 거쳐 쏟아져 나온다. 아줌마 부대는 곧장 기다리고 있던 중년여인에게 다가 가 보따리들을 차례로 건넨뒤 엔화 한묶음씩을 받고 사라진다. 잠깐사이 수 십개의 보따리를 챙긴 여인도 재빨리 공항밖으로 빠져 나간다.

무슨 첩보영화 장면같지만 사실은 보신탕 계절이 되면서 생겨난 일본공항 의 진풍경이라고 한다. 중년여인이 챙겨간 보따리 속에든 수화물은 T셔츠나 인삼차가 아닌 바로 한국에서 수송해 온 보신탕 재료들. 각각 다른 보따리마 다 개고기와 깻잎, 풋고추, 마늘양념까지 고루 나뉘어져 들어있다. 보신탕용 개사육이 허용돼있지 않은 일본에서 일부 재일동포들의 여름입맛을 위해 생 각해낸 '보신탕 공수작전'의 신풍속도다.

최근 어느 재일동포가 직접 목격하고 수송된 보신탕을 먹었다는 체험담이 다. 보신탕 한그릇에 1천5백엔, 갈비 등은 1인당 5천엔으로 서너명이 소주를 곁들이면 30만원은 좋이 날아가는 만만찮은 값이지만 공수를 해야할 만큼 없 어서 못판다는 얘기다.

보신탕 해외공수작전까지 생겨날 만큼 극성스런 한국인의 보신탕 식문화 (食文化)는 재일동포 사회에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의 조선족 동포들 역시 요즘 한창 여름 보신중이다. 연변지방 일대의 개들은 이미 바닥이 난지 오래 다. 수년전 부터는 개가 모자라 남쪽 산동지방까지 내려가며 개들을 공급하 고 있다. 좀 더 있으면 양자강 이남까지 개를 찾아 계속 남진(南進)할지도 모른다. 보신탕을 위해서는 수천㎞를 누비는 노고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기세다. 물론 일송정 푸른솔이 서있는 용정 인근 산언덕빼기에까지 '개목장' 이 생겨나고 있지만 조선족의 한여름 식도락을 충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 다.

'개목장'은 북한에서도 사정은 같다. 북한의 개목장은 주로 군부대 주변에 서 사육된다고 한다. 개목장에서 개짓는 소리와 싸우는 소리가 인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문제를 고민해 오다 언젠가 조총련으로부터 성대를 끊고 청각을 제거하는 사육법을 권고받고 난 뒤부터는 사육법을 바꿔 집단 먹을거리생산 을 하고 있다.

북한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개고기 부위는 껍질, 남한 보신탕애호가들도 유난히 껍질요리를 즐기지만 78년까지만 해도 북한사람들은 껍질요리는 먹지 못했다고 한다. 외화벌이를 위해 껍질은 털옷으로 가공해 수출하려 했기 때 문, 그러다 1978년 멋모르고 개사랑이 유별난 영국에다 개모피 수출을 시도 했다가 동물학대 시비에 휘말려 망신을 당한 뒤부터 개모피 수출을 취소하고 나서야 인민들도 껍질요리를 먹게됐다는 거다.

그처럼 보신탕을 즐기는 북한사람들도 바닷가에서 자란 개는 안먹는다고 한다. 바닷가 개를 먹으면 정신이 흐려진다는 이상한 속설을 믿어서다. 재작 년무렵 식량난이 점차 심해지면서 사료를 댈 수 없자 수천마리의 돼지를 집 단도살했던 북한은 개목장에도 상당수 도축바람이 불었으리라 추측되고 있 다.

이처럼 남한, 북한, 중국, 일본할것없이 세계도처에서 유별나게 보신탕을 즐기는 건 전통적인 식문화의 기호탓도 있겠지만 개고기가 일종의'비아그라 식(食)'으로 인식돼있는 원인도 없지 않다. 임상적으로 검증안된 얘기지만 일부 재일 동포사이에는 보신탕은 계속 세번 이상을 먹어야 비아그라식 효과 를 본다는 '설'이 퍼져 있다고 한다. 하루걸러 한번씩 3번 거푸 먹으면 최소 한 2주일 동안은 계속 '고개든 남자'가 될 수 있다는 설이다.

보신탕이 과연 비아그라식(食)인지 아닌지 딱부러지게 논란할 수는 없지만 한국인들이 세계 어디든 어떤 체제든 보신탕에서는 하나로 통일된다는 데서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경제적 우열체제라는 것이 민족의 동질성까지 뿌리째 변질 시킬 수는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엿보게 된다. 무더운 여름, X판 같다 고들 하는 답답한 정치판 얘기대신 허튼 보신탕 얘기를 늘어놔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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