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한민국 50년 한국인 다시 날자

지난 48년 정부수립이후 50년을 지나면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는 수많은 인물들이 역사의전면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져갔다.

이들 인물들중 일부는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지만 일부는 여전히 생존해 영향을 미치고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48년 대통령 취임후 60년 4.19혁명으로 망명길에 오르기까지 13년간건국 초기의 혼란스러웠던 대한민국을 이끌었다.

그는 한때 국부로 추앙받기도 했으나 해방직후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였던 일제잔재청산과제를 도외시한 채 독재와 권위주의의 길을 걸어 역사가들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는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는 선언에서 드러나듯 우리 민족과 함께고난과 영욕을 같이한 지도자로 꼽힌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는 사법부를 권력의 시녀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이승만 정권에 맞서 사법부의 독립을 지킨 청렴한 법관으로 평가된다.

초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은 건국 초기의 보잘것없는 우리경제상황에서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을 실천한 민족기업가로 기록된다.

한글학자 최현배는 건국 초기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우리 말본', '한글갈'등 국어학의 역사에 영원히 남을 저서들을 남겼고 '씨없는 수박'을 길러낸 우장춘은 해방직후 거의 완전한 불모지였던 한국 과학계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로꼽힌다.

또 한글기계화 작업을 선도한 공병우도 이 시절에 한글타자기를 발명, 보급하는 등 의미있는 생을 살았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로마교향악단의 지휘자를 지내는등 세계 음악계에서 신생국가인 한국의 국위를 선양했고, 37년에 걸친 노력으로 가족법 개정을 성사시킨 여성변호사 1호 이태영 변호사도 56년 한국의 수많은 불행한 여성들을 위해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전신인 '여성법률상담소'를 설립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후 대통령에 취임해 5.16쿠데타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윤보선대통령은짧은 대통령 재임기간과는 대조적으로 20여년간 박정희 정권에 반대한 유신치하 반체제운동의 원로로 꼽힌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쿠데타로 합헌정부를 뒤집어엎고 민주주의를 뿌리째뽑아버린 독재자로 비난받지만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으로 나라의 면모를 갖추게 한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평가되는 등 이승만만큼이나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그에 대한 평가는 그러나 최근 들어 '유신', '긴급조치' 등의 용어로 정의되는 민주헌정질서 파괴자로서 보다는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우리의 오랜 속담에도 불구하고우리나라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끈 위인으로서 긍정적인 방향에서 새롭게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인들이 사회 전면으로 부상한 것도 박정희 정권시절이었다.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과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LG그룹 창업자인 구인회 등 3인은3공화국의 산업화, 공업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나 우리 경제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는 정경유착과 재벌 탄생의 산파라는 점에서 비판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대우그룹 설립자인 김우중과 포항제철을 세계 굴지의 철강업체로 키운 박태준,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등도 박정희 시대가 낳은 기업인들로 현재 우리사회에서도 여전히 영향력을행사하고 있다.

종교계 지도자로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69년 추기경에 서임된 이래 최근 서울대교구장 직위를 물러나기까지 교회의 사회참여를 이끌어 오면서 한국 가톨릭의 정신적 지주이자국민적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개신교에서도 영락교회를 세운 한경직 목사는 생전에 장로교계의 세계적 지도자로 꼽혔다.2차례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바 있는 함석헌은 20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 사상가로 꼽히며 분신자살로 개발독재 시대의 암울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한 노동자 전태일,'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저항시로 유명한 시인 김지하, 통일운동의 선구자 문익환 목사등도 3, 4공화국 시절에 태동해 90년대까지 우리 사회 발전의 한 축을 지탱한 재야운동의상징적인 인물들이다.

문화예술인들로는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세계적인 천재예술가 백남준과 '동백림간첩단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기도 한 현대음악가 윤이상, 트로트로 온 국민의 심금을 울린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등이 이 시대에 등장했다.80년대는 5.17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과 그의 뒤를 이은 노태우 대통령등 새로운군사정권의 시대로 정의된다.

두 전직 대통령은 그들의 뒤를 이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비자금 사건과 5.17 및12.12 쿠데타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옥고를 치르는 등 우리 역사 속에서 영욕을 함께 했다.

문민정부를 이끈 김영삼 대통령과 현 김대중 대통령, 김종필 총리서리 등 소위 '3김'은박정희 시대에 서로 다른 맥락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해 3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우리 정치사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현대 불교 정신사의 거목인 성철 스님은 81년 조계종 종정에 취임해 90년대초 입적하기까지 불교계를 이끌었고 김창준씨도 이 시절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하원의원에 당선돼우리 국민의 자부심을 고양시켰으나 선거자금 불법모금으로 좌초하고 말았다.

체육계 지도자들로 김운용씨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부위원장에당선됐고,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2002년 월드컵 공동유치로 국민들에게 기억되고 있다.이밖에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대중가수 조용필과 서태지, 판소리의 대가 김소희와 사물놀이의 세계화에 공헌한 남사당 후예 김덕수, 동양화가 김기창 화백, 세계 기전을 휩쓸었던 바둑계의 황제 조훈현,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야구선수 박찬호, 골프선수 박세리, 축구선수 차범근, 마라톤의 영웅 황영조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역사의 별들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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