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부수립 50돌 되돌아본 문화예술 (3)영화

지난 61년 개봉된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사진)'은 우리나라 영화사상 리얼리즘의 극치와 치열한 작가정신을 꽃피운 것으로도 꼽히지만 군사 정권의 영화계 탄압 신호탄이라는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4.19 혁명의 공간에서 제작됐던 이 영화는 공교롭게도 5.16 쿠데타에 즈음해 동시에 개봉되는 바람에 '유탄'을 맞아 상영이 금지됐다. 이유는 너무나 암담한 현실을 표현했다는 것.군부의 '즉결처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권 국가재건최고회의는 62년 1월 사상 첫 영화법을 전격 제정, 공포한다. '한국 영화의 기업화'를 표방하면서 영화사를 등록제로 고치고등록 요건을 까다롭게 규정한다. 이에따라 당시 '난립했던' 영화사 71개는 자진통폐합이라는형식으로 16개로 축소된다.

군사정부는 이어 64년 외화에 대해 수입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영화사에 외국영화 수입쿼터를 할당해준다. 또 65년에는 수입 외화 편수를 제한하는 한편 연간 최소 60일간은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스크린 쿼터'(screen quota)제를 처음으로 실시한다.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한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는 영화의 양적 성장면에서는 큰성과를 거둔다. 61년 79편에 불과하던 영화 제작 편수가 70년에는 2백31편으로 급증한다. 지난해 영화제작 편수가 59편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물량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산업은 1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좌초하고 만다. 72년 당시 23개의 영화사중 20여개가 부도처리되는 전면도산의 길을 걷는다. 영화가 예술성을무시한 채 저질작품을양산함으로써 관객의 외면을 받은 결과다.

유신으로 정권을 연장한 정부는 73년 영화법을 개정, 이전보다 더 강력한 통제정책을 실시한다. 영화사를 허가제로 전환하고 영화제작은 '유신이념을 구현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검열도 당시 긴급조치 수준을 적용해 더욱 엄격해진다.

대신 영화계에 대한 '당근'으로 수입외화 편수를 한국영화 제작의 3분의1 이내로 하고 상영일수도 연간 3분의2 이내로 제한한다. 외화수입은 자연히 희소성과 함께 거대한 이권사업화한다. 정부는 영화사에 한국 영화 제작편수에 따른 외화 수입쿼터제를 나눠준다. 설탕 묻힌당근격인 '제작.수입 연계제'에 영화계는 탐닉한다.

당연히 작품성은 더욱 추락하고 사회계몽물, 개성없는 문예물이 은막을 채우게된다. 외화 수입 쿼터를 따기위해 엉성한 한국 영화를 양산한 것. 관객은 이제 한국영화에 완전히 식상한다. 79년 영화 관객수는 6천5백만명으로 절정기였던 69년에 비해 3분의1 수준으로 전락하고야 만다.

80년대 한국 영화는 다행히 전환점을 맞이한다. 유신정권의 종식과 함께 영화통제정책이 약화되면서 질적 향상이 이뤄진다. 85년 근 12년만에 영화법이 개정되고 영화사는 다시 등록제로 바뀌며 등록요건도 완화된다.

그러나 한국 영화계는 50년대에 보여줬던 역동성을 회복할 겨를도 없이 '내우(內憂)'가 끝나자마자 통상압력이라는 '외환(外患)'의 격랑에 시달리게된다. 86년 외국 영화사의 국내 직접배급이 가능하도록 또 한차례 영화법이 개정돼 88년 첫 직배 영화 '위험한 정사'가 상영된다. 이어 90년에는 미국 비디오 업계의 직배도 시작된다.

90년대에는 삼성, 대우 등 국내 대기업들이 영화제작업에 진출하지만 대부분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모방, 한국 영화 자체의 영역을 확보할는 데 실패한다. 이제 대기업들은 헐리우드 영화에 대항해 수익성을 올리기가 어렵다고 보고 돈이 되는 외화수입과 비디오 배급으로 방향타를 수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마지막 보호막으로 남아있는 '스크린 쿼터'제마저 더욱 거세진 통상압력의 파도를타고 폐지 논의가 추진되고 있어 영화계는 사실상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에 제작된 일부 한국 영화가 수지를 맞추고 있는 점과 국내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벼랑끝에 내몰린 한국영화에 일말의 회생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기는 하다.

영화인들은 거대 자본이 소요되는 영화산업을 영화인들만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되살릴 수없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의 영화 산업은 케이블 TV 및 비디오 시장, 캐릭터 산업 등 총체적인 영상 산업과 맞물려 육성돼야하고 이를위해 이제는 정부의정책적인 뒷받침이 선행돼야한다는 논리다.

상명대 서인숙 교수는 현 상황에서 영화 산업의 완전 시장 개방을 추진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스크린 쿼터제 폐지 논쟁에서도 드러났듯이 가장 시급한 것은 한국 영화의 안정적인배급망 설립 이라고 지적한다.

시네마 서비스의 김미희 기획이사는 영화계를 떠나는 감독들이 늘고 있는 현상이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며 △외국 및 대기업의 한국 영화 제작 투자 유도 △해외 영화 시장 정보의 확충 △영화 전문인력 양성기관 활성화가 절박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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