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만남

저녁 9시쯤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는 춥고 탈 사람은 많아 합승이라도 할까하여기웃거리는데 택시 한대가 유독 나를 찾아 선다. 머뭇거리자 다른 사람을 놔두고 나보고타라고 한다. 이유가 있다싶어 탔더니 기사분은 나이 지긋한 노신사였다.

앉자마자 왜 수녀를 태우게 됐는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본래 과학선생이었고 발명품을만들어 특허를 내고는 학교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실패를 보고 빚만 잔뜩 안은채거리로 나앉게 됐단다. 갚을 길 없는 빚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방황하다가 성당을 찾았다. 그때 교리반을 맡아 가르치던 수녀님을 통해 삶의 의욕을 되찾고 세례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그후 온가족이 힘을 합해 열심히 일을 해 빚도 거의 갚았고 빚이 끝나는대로온가족이 세례를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 소식을 당시 교리 수녀님께 알려드리고 싶은데 어디 있는지 알수 없어 날마다 수녀만 보면 태워 그 수녀의 소식을 묻는다고 했다. 그 성당이라면 나도 있었던 곳이라 그 수녀의성함을 아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그는 얼굴은 기억 못해도 이름은 알고 있었다.나는 놀라움을 감추고 빙그레 웃으며 가만히 그 기사님을 쳐다보았다. 5년이 넘어서인지얼굴은 나도 기억에 없었다. "제가 바로 그 수녀입니다" 했더니 그는 무척 놀라고 반가워했다. 짧은 거리라 많은 이야기를 못하고 연락처를 주고 받고는 헤어졌다.

그리고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분은 어떤 신앙인보다 믿음이 두터운분이란 생각이 든다. 주님이 그분의 기도를 듣고 다시 나와의 만남을 이뤄주셨으니. 그분의 일하는 손과 바쁜 발걸음에 주님의 축복이 햇살처럼 쏟아지도록 기도하고 싶다. 문 오틸리아〈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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