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는 9월18일 오후 3시30분 서울에서 이륙한다. 도쿄를 경유해서 서북항공로를 통해 북미대륙을 향한다. 이때부터 재미있는 경험이 시작되고는 해서 한국 시각에 맞추어진 시계를 일삼아보아가면서 항공기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메모해 본다.
오후 5시25분 전후가 되면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하면서 해가 서쪽으로 떨어질 거조를 차린다. 그러다 오후 6시30분이 되면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깃든다. 밤의 길이는 네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오후 10시30분에는 먼동이 튼다. 항공기가 캄차카반도에 접근할 무렵이다. 오후 11시10분,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알래스카의 맥킨리산맥이 보이기 시작한다.
항공기의 고도는 4만피트, 그러니까 약 1만3천m 상공을 날고 있다. 기온은 지상에서 100m씩 올라갈 때마다 약 0.7도씩 낮아진다. 따라서 1만3천m 상공의 기온은 지상에 견주어 약 91도가 낮다.만일에 지상의 기온은 섭씨 30도라면 만3천m 상공의 기온은 영하 61도가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제트엔진에서 나오는 배기가스에는 수증기가 섞여있다. 이 온도에서 수증기는 대기와 접촉하는순간 빠른 속도로 하얗게 얼어버린다. 그래서 항공기의 제트엔진이 하얀 항적운(航跡雲)을 분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눈 아래로 하얀 삿갓조개 같은 맥킨리산맥의 연봉이 내려다 보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삿갓조개의 동쪽 사면이 시시각각으로 밝아진다. 눈부시다. 세상에… 오후 11시25분에 해가 뜬다. 삿갓조개 동쪽 사면의 양지와 서쪽 사면의 음지가 확연해진다. 하늘은 얼음덩어리가 뜬 스카치 위스키 빛깔이다. 동쪽 사면의 눈은 녹고 없다. 서쪽 사면은 눈으로 덮여있다. 동쪽 사면의 기온차는서쪽 사면보다 커서 조산작용(造山作用)이 활발하다. 이제 왜 모든 산들이 왜 동쪽을 보고 서 있는지 알겠다.
그로 부터 4시간 뒤인 오전 3시30분, 항공기는 미국의 자동차 공업 도시 디트로이트에 착륙한다.현지 시각은, 떠날때의 한국 시간과 같은, 같은 날 오후 3시30분이다.
문제는, 왜 오후 6시30분에 해가 떨어지고, 11시25분에 해가 뜨는가, 하는 것이다. 밤의 길이가 왜겨우 네 시간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근 11시간은 날아왔는데 현지 시각은 어째서 같은날 같은 시각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괴한 일은 어째서 일어나는 것인가?한국시간으로 보아서 그럴뿐이다. 캄차카든 북태평양이든 알래스카든 해뜨는 시각, 해지는 시각은우리와 비슷하다. 시간을 현지 시각에 맞추지 않고 한국 시간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이런 해괴한일이 벌어진 것이다.
북미대륙에는 7개의 시간대가 있다. 가장 동쪽에 있는 뉴펀들랜드 시간대와 가장 서쪽에 있는 알래스카 시간대의 시간차는 무려 6시간 반이나 된다. 뉴욕은 동부시간대, LA는 태평양 시간대에든다. 이 두 도시의 시간차는 3시간이다. 그러니까 뉴욕 사람들이 자정을 넘기는 시각이 LA 사람들에게는 저녁상을 물린 시각이 된다. 비행기를 세번이나 갈아타면서 미국의 동부에서 서부로 여행하는 날, 국내선 여객기에서 아침 밥을 세번씩이나 얻어먹은 희한한 경험이 내게 있다. 자동차몰고 서부로 여행하면서 시계의 시간을 세 번씩이나 바꾼 경험도 내게는 있다. 항공기가 태양을죽자하고 쫓아갔기 때문이다.
시골에 갈 때마다 놀라는 것이 하나 있다. 넓은 세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시골 사람들의 태도다. 모르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그들의 태도다. 일찍이 장자가 '우물 안 개구리(井底蛙)'라고 비아냥거리던 태도가 바로 이것이다. 어째서 사람들은 자기 인식의 지평 넘기를 어째서 한사코 거절하는지. 어째서 이녁의 시간에 맞추어진 시계를 차고는 해괴하다고만 하는지… 바야흐로 지구적으로 사고하고(think globally)지역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act locally)시대다.이제 그렇게 살아야 한다.
〈소설가〉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