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우울한 한글날

오늘은 5백52돌을 맞은 한글날이다. 우리는 해마다 그래왔듯이 소리글자인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이 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빼어난 업적을 기린다. 우리말을 잘 살려 쓰자는 주장도 되풀이한다. 하지만 아이를 내버리고 멀리 떠난 부모가 아이의 생일이면 찾아와 사랑한다고 말하고 다시떠나버리듯이, 한글은 그런 아이처럼 1년에 단 한번 형식적인 사랑을 받을 뿐이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우리 한글의 현주소는 이같이 우울하고 처량하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한글은 이제 벼랑끝으로몰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정체불명의 신조어와 외래어들이 넘쳐나고 한글의잘못된 사용으로 우리말 파괴 현상이 날로 극심해지고 있다.

거리의 간판이나 제품 이름이 순수한 우리말로 된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7백여개 상장회사 가운데 우리말 이름을 가진 회사는 '빙그레'와 '오뚜기' 뿐이라니 알만도 하다.특히 신세대들이 컴퓨터 통신을 통해 흔히 쓰는 은어들은 도가 넘쳐도 한참 넘친 수준이다. '당연하다'가 '당근', '반가워요'가 '방가', '이만 안녕'이 '20000'으로 통하고, '열 받는다'가 '욜 받는다', '몰래 하는 미팅'이 '몰팅'으로 쓰이기도 하는 助瑛甄裏 억지스럽고 무리하게 줄인 말, 외래어와 우리말의 '잡탕'인 이들 은어들은 우리말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세계의 언어가 21세기에는 90%나 사라질 것으로 내다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글의 장래도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그 나라의 글은 그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며, 말은 곧 그 민족의 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계 역사상 남의 나라 말과 글로 강대국이 된 나라는 없다는 교훈도 다시 한번 되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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