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침몰 대구경제 '고부가'로 살리자

"대만 섬유업체들은 다른 업체가 생산하는 제품은 생산하지 않습니다. 반면 지역 업체들은 다른업체의 제품이 인기를 끌면 곧장 따라가 베낍니다. 제품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지는 것은 물론 단가도 폭락, 함께 망하는 거지요"

대구.경북견직물조합의 장해준 상무는 "섬유는 고부가 가치화에 앞서 차별화.전문화가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주)새한이 생산한 고부가가치 폴리에스테르 섬유 '에비카'가 대표적인 예. '에비카'는 피치스킨 중 최고급 섬유제품으로 시장에 첫선을 보였을 때 야드당 수출단가가 20달러를호가했다. 일반 폴리에스테르 섬유가 야드당 2달러를 받기힘들다는 점에서 엄청난 고부가 가치섬유다. 하지만 '에비카'는 요즘 야드당 7~8달러선으로 수출단가가 뚝 떨어졌다. 다른 섬유업체들이 너도나도 '에비카' 생산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주)코오롱 영남지사장 이춘만 이사도 장상무와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이이사는 "카피(copy)문화가 근절돼야 차별화가 가능하다"며 "공정을 조금만 변형하면 특허침해 소송을 회피할 수 있어 특허를 내봐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주)코오롱의 경우도 '울론'이란 신제품을 개발했으나 곧이어 유사 복제품 '울스타' '라텍스'가 나와 개발비만 날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베끼기가 범람하니 원사와 직물업체 모두 신제품 개발을 소홀히 하게된다. 그렇다고 이를막을 제도적 장치도 없다.

'검은 양심'들에 대항하는 유일한 대안은 쉽게 복사할 수 없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 섬유개발연구원의 전병익 선임연구원은 "연구원이 밀라노 프로젝트의 하나로 추진중인 '신제품개발 지원센터'에 원사가공 설비를 집중투자하려는 것도 원사복제를 막아 복제직물 양산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밝혔다. 원사가공기술을 높여 쉽게 복사할 수 없도록 하면 차별화 제품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화가 지역 섬유업계의 관건이지만 고부가 가치화도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차별화의 전제가고부가 가치화이기 때문이다. 대만.인도네시아.중국 등 섬유 후발국의 추격이 거세 고부가 가치섬유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면 차별화할 수 없다는 얘기다.

(주)코오롱의 이이사는 "지난95년을 기점으로 섬유수출이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있다"며 "일본 신합섬의 수익성이 그래도 우리보다 나은 만큼 일본을 따라가면 5년정도는 차별화 시장을 유지할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차별화를 위해 모든 업체가 첨단.신소재 섬유개발에 뛰어들어야 할까. 영남대 섬유공학과 김승진 교수는 고부가 가치 섬유개발과 다품종 소량생산체제 구축이란 과제에 대한 해답을 한꺼번에 제시했다.

"모든 업체가 첨단.신소재 제품개발에 뛰어들 필요는 없어요. 고부가 가치 섬유생산의 선두주자일본 섬유산업도 최근 의류용 섬유개발에서 산업자원용 섬유개발로 선회했습니다. 첨단.신소재 섬유 소비국은 일본을 비롯 유럽과 미국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일부 상류층에 국한돼 소비량은 소량일 수밖에 없습니다. 첨단.신소재 섬유개발에 의한 시장창출이 한계에 부닥친 것이지요. 또 모든 업체가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갈 수도 없습니다. 개별 업체가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를 구축해도 업체마다 차별화.전문화가 돼있지 않으면 시장에선대량생산체제와 마찬가지 결과가 나와요.

기존의 대량 생산체제라도 차별화.전문화돼 있다면 국제시장에선 소량생산에 불과합니다. 따라서대량생산체제와 다품종 고부가 가치 섬유제품 생산체제를 병행해야 합니다" (주)코오롱의 이이사도 "대량생산체제라도 경쟁력이 있는 업체는 그 생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고부가 차별화 제품생산은 일본 업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며 김교수 의견에 동조했다.

대구섬유산업의 고부가 가치화를 위한 또하나의 과제는 패션어패럴 산업의 육성. 대구시가 패션어패럴 밸리 조성을 비롯 패션디자인개발 지원센터 설립과 패션정보실 설치를 밀라노 프로젝트의주요 사업으로 선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패션어패럴 밸리 조성건은 대구시와 섬유업계,그리고 학계사이에 찬반론이 팽팽하다. 직물위주의 대구섬유산업 고부가 가치화를 위해선 어패럴밸리 조성이 필수적이란 찬성론과 당위는 인정하나 현실성이 없다는 반대론이 그것이다.

"어패럴 산업을 육성해야 대구 섬유산업에 고급 두뇌들이 모이고 직물의 고급화도 이뤄집니다.대규모 봉재공장 유치보다 서울 남대문.동대문시장식의 소규모 봉재시설과 판매유통망을 병행한단지를 조성해야 합니다. 대구시가 인센티브를 주면 남대문.동대문 상인들도 어패럴 밸리에 입주할 것입니다"(대구시에 패션어패럴 밸리 조성 아이디어를 제공한 대구대 경영학과 금영철 교수)"봉재기술이 축적돼있지 않은데다 봉재인력도 없습니다. 게다가 봉재는 브랜드싸움인데 브랜드와유통망이 확보되지 않으면 봉재단지를 조성해봐야 임봉재 단지로 전락할 우려가 큽니다. 그렇게되면 지금의 직물.염색보다 더욱 열악한 영세 노동집약 산업단지가 될 공산이 큽니다"(영남대 김승진 교수)

〈曺永昌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