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 오-매 단풍 들겄네

시월의 벼 논에는 가을바람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悲愴)'을 연주하면서 벼 이삭들이하얀 알곡을 여물게 하고 있었다. 햇살의 손길 고루 닿도록 태풍에 시달린 벼 이삭의 등어리를이리 뒤적 저리 뒤적 바람이 땀 흘리며 시간가는 줄 모른다.

홍수의 피해 소식이 참담했었는데 바람의 빛깔 무궁무진해서 그나마 누렇게 여물어 가는 들판을보니 그동안 애쓰신 농민들께 감사드리고, 죄송스런 마음과 더불어 익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를 새삼 느낀다. 고통없이 어찌 여물어가겠는가? 익는다는 것은 또 젊음을 잃어간다는 뜻도 되니 쓸쓸한 그 마음 안다는 듯이 건너편 숲이 노을에 물든 어머니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오-매 단풍 들겄네'/장광에 골불은 감닢 날러오아/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보며/'오-매 단풍 들겄네'/추석이 내일인데 기들니리/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오-매, 단풍 들겄네'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겄네']

초록이 지치도록 기다렸다가 바람이 얼른 초록잎에 몸섞으면 단풍이 든다. 화려하게 바람든 잎새의 속은 또 얼마나 아플 것인가? 아픔이 곧 성숙이고 아름다움이며 그끝엔 이별이 분명 기다리고있을 것이다. 사람도 나뭇잎과 같아서 내마음 마지막 단풍들고 나면 더이상 잃을 것없어질테니이젠 아름다운 이별연습을 해야겠다.

가시는 거름거름/노힌 그 꼿츨/삽분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나보기가 역겨워/가실때에는/죽어도아니 눈물 흘니우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소월의 이별도 아름답지만 우리 한글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과 그것을 갈고 닦으신 선조들께 진정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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