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파노라마 20세기 문화(8)-러시아 발레 혁명

"나를 놀라게 해보게. 장" 1909년 러시아발레단을 창설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감독은 어느날 젊은 미술가이자 작가인 장콕토에게 불쑥 말을 던졌다. 내로라하는 무용수들이 서는 발레무대 디자인을 부탁한 것이다.

'놀라게 한다' 이는 흥행의 귀재 디아길레프의 성격과 20세기 예술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말이다. 현대 예술의 창조적 에너지는 일상성을 과감히 배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디아길레프. 그는 무용수도, 안무가도, 창작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무용단의 연출가로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난 그는 당시 프랑스 등지에서 쇠퇴기로 접어든 고전발레를 현대 예술로 새롭게 도약시킨 장본인이었다. 당대의 진보적인 미술과 음악을 수용, 발레 역시 현대 예술 장르로 혁명적일수있음을 증명한 것.

디아길레프의 러시아발레단은 창단 첫해에 파리에 상륙,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아라비안나이트, 러시아 신화 등을 소재로 한 동양적 신비와 에로티시즘의 새로운 세계는 파리 시민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백조의 호수'나 '지젤'같은 판에 박인 전통 발레와 너무도 다른 대담하고 현란한 무대였다. 안나 파블로바, 바슬라프 니진스키, 타마라 카르사비나 등 유명 무용수들이 눈부신무대를 선보였다.

4년뒤인 1913년 5월. 파리 사교계는 또다시 대혼란에 휩싸인다. 바로 극장가에서 가장 악명높은소동을 일으킨 '봄의 제전' 공연 때문이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으스스한 불협화음과 폭발적인 리듬으로 막이 오르자 헐렁한 옷차림을 한 40명의 남녀 무용수들이 춤이랄수 없는 우스꽝스런몸짓을 했다. 바로 신랄한 야유와 찬사가 뒤엉켜 극장안은 주먹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비평가들로부터 '봄의 학살'이라는 조소까지 당한 이 공연으로 인해 니진스키는 자신의 안무가 '간질병 발작'과 '추악한 동작'의 모음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들어야했다. 당시 보고 듣던 발레와음악의 관행을 무시한 충격적인 무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봄의 제전'은 디아길레프의 다른 작품들처럼 현대적인 동작들이 발레의 전통적인 토대를 손상시키지 않고 도입될수 있음을 보여줬다.

새로운 테마와 무용 동작만큼이나 전에 없이 화려한 무대장치와 의상도 관객을 도취시켰다. 당시위대한 예술가로 첫발을 내디딘 피카소, 브라끄, 드랭, 마티스, 그리스 등이 러시아발레단을 위해원근효과를 살린 현란한 무대장치와 의상을 선보였다. 스트라빈스키는 디아길레프를 위해 발레곡을 9곡이나 작곡했으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풀뿔랑, 포레, 라벨, 드뷔시 등 음악가들이 새로운음악을 작곡했다.

디아길레프는 당대의 탁월한 발레 안무가였던 미셸 포킨, 바슬라프니진스키, 레오니드 머신,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 조지 발란신 등을 고용, '불새' '목신의 오후' '돌아온 탕아' 등 독창적·실험적인 작품들을 서양에 소개했다.

그러나 20년에 걸친 러시아발레단의 명성은 1929년 디아길레프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갔다. 하지만 발레역사에 신화를 남긴 선구자의 이름은 영원히 남아있다. 안무, 무용, 무대 장치, 음악 등을완벽하게 결합, 조화시킨 총체예술로서 단순한 눈요깃거리 이상의 새로운 발레 예술을 탄생시킨것이다.

〈金英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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