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강산관광 현지서 만난 북사람들

금강산관광길에서 북한주민들은 한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온정리를 지나는 길이나 해금강으로가는 길 곳곳에서 철조망 너머로 눈이 마주치는 주민들이 뜨겁게 손을 흔들어 남쪽 관광객들을환영했다.

온정리나 봉화리주민이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이들은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함께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삼일포에서 온정리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탄 버스가 지나가자 두눈만 드러낸채 바위뒤에 숨은 중학생쯤으로 짐작되던 한 소년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북쪽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금강산이 예전 그 모습 그대로였듯 북쪽사람들의 모습도 순박했다.그러나 이들의 생활은 경제난을 반영하고 있어 우리 관광객들이 주머니를 만지작거리게 할 정도로 안타까웠다.

그러나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북쪽사람은 금강산관리원들과 지도원 및 출입국관리소의 직원들뿐이었다. 특히 사전교육을 받았겠지만 관리원들은 관광객들과 잘 어울리면서 노래를 불러주는 등좋은 인상을 심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북측은 관광코스마다 12명씩의 관리원을 배치했다. 구룡폭포에서 만난 조기준(31)이라는 관리원은동포를 만나 기쁘다면서 빨리 통일이 돼야 한다며 우리 관광객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줬다. 그러나 사진을 찍자는 요구에는 작업복차림이라며 한사코 거부했다.

또 삼일포에서 만난 여성관리원(24)은 '동포여러분, 형제여러분'으로 시작되는 반갑습니다라는 노래를 불러주며 관광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전형적인 북한처녀의 모습을 간직한 듯한 다른여성관리원도 '심장에 남는 사람'과 '휘파람' 등 북한의 대중가요를 불러 인기를 독차지했다.북측 관리원들은 그러나 관광객들이 음식물 등을 주려고 할때에는 화를 내는 등 자존심이 강한듯했다.

북측관리원들과 실향민들이 곳곳에서 주소를 건네받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해금강이 바라보이는 고성읍 입석리가 고향인 이창식(67), 영식(65)씨형제와 홍익찬(55),용찬(54)씨는 고향을 지척에 둔 해금강의 바닷가에서 함께 제상을 올렸다.

고향쪽을 바라보고 눈시울을 적시던 이들은 결국 이영식씨가 "엄마 아버지 이제 저 갑니다"라며울음을 터뜨리자 함께 통곡했다. 열일곱살에 떠나 49년만에 칠순이 다된 노인으로 돌아온 이씨에게 생사도 알수 없는 어머니는 여전히 '엄마'였다.

버스가 온정리를 지나 해금강쪽으로 돌아가려 하자 남북합작으로 지은 태창생수공장터가 고향이라는 한 실향민은 버스를 세워 절을 하려다가 북측경비병의 제지를 받기도했다.또 박순용씨(77)는 이번 금강산길에서 48년만에 어머니의 사망을 통보받기도 했다. 박씨는 동포애를 발휘해달라며 출입국관리소의 직원에게 부탁해 이틀만에 생사를 통보받은 것이다.실향민들은 "금강산에 열린 남북길이 이제 고향땅으로도 열리게 되었으면 좋겠다"며 내년에도 다시 올 것을 기약했다.

〈徐明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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