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흰눈에서 깨우쳐라

'제2경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걸었던 수많은 통치 슬로건중의 하나다. 그는 국가의 경제성장은 정부나 지도자가 별난 경제이론이나 거창한 경제정 책을 내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일상생활속에서 사소한 생활경 제를 함께 실천하고 동조해 줘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자동차 산업을 일으키고 수출정책을 펴가는 정부 경제정책부문이 제 1경제 라면 자동차를 탈때도 가급적 경제속도 (70㎞)를 지키려 애쓰는 국민들의 생 활경제 의식개혁은 또 다른 경제영역, 즉 제2경제라는것이 박대통령의 논리 였다. 근검과 생활경제 의식개혁을 강조했던 제2경제정신을 잊고 산 탓에 오 늘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는 반성이 없지 않다.

'제2경제'가 당시엔 좀 귀설은 구호이긴 했지만 국민들이 그 구호를 불평 없이 잘 따랐던 것은 경제성장에 매달린 지도자의 혼이 담긴 듯한 경제개발 의지와 합리적 통치(유신이전)에 이끌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국 민정부가 내걸고 있는 제2건국의 술로건이 깃발도 제대로 내걸기 전에 곳곳 에서 저항과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것 같다. '제2건국'은 새롭고 신선한 개 혁의 구호같지만 사실은'신한국건설', '신경제'같은 반짝구호처럼 과거정권 때도 잠시 떠올랐던 낡은 메뉴다.

통치 슬로건이란 것이 반드시 꼭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것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른 지도자가 한번 써먹었던 구호든 구정권때의 낡은 구호든 국론을 결집시키는데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면 같은 구호를 또 들고 나와서 나쁠 것 없다. 다만 같은 구호나 비슷한 술로건이라도 그 깃발을 든 지도자 가 어느 만큼 신뢰받고 구호와 일치된 합리적 통치를 하고 있는가 여부에 따 라 국민들의 동조와 공감을 얻을 수도 있고 외면 당할 수도 있다는 차이는 분명히 있다.

새마을 운동과 제2경제 구호를 내걸고 성공한 박대통령과 신한국, 신경제 를 내세웠지만 실패한 매력없는 지도자들의 통치사에서 그 차이는 쉽게 살필 수 있다. 이번에 다시 등장된 김대통령의 제2건국 슬로건이 왜 일부지역의 시·도의회, 야당 정치권 그리고 영향력있는 시민단체들로 부터 깃발도 들기 전에 맞바람을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위기에 놓인 한국이 새로운 건국 의 자세로 거듭나야 한다는 명제는 옳다.

그렇다면 거듭나는 방식과 과정, 추진주체의 지도력또한 명제의 당위성 만 큼 합리적이고 신뢰를 얻어내야 한다. 우선 제2건국의 기본 정신이 과거 정 치와 정권의 부조리한 관행을 깨뜨리고 개혁하자는데 있다면 일단 건국의 추 진주체가 먼저 새로운 이미지로 보여져야 한다. 국정능력이 달라 보이고 정 치적 양심이 달라 보이고 법과 정의를 지킴에 있어 달라 보여야 하는 것이 다. 그런데 구호의 주체인 집권정부와 여당을 쳐다보면 크게 달라 보이질 않 는다. 간첩선이 유람선처럼 영해를 휘젖고 다녀도 번번이 눈뜨고 놓치는 국 방능력, 비(非)교대출신자를 초등교사로 발령해야할 만큼 교사 수급계획도 못세우면서 교사정년만 일시에 단축하는 주먹구구식 행정능력, 야당할 땐 특검제를 주장하다가 여당되고 나니까 특검제 수용을 꺼리는 정치적 양심과 먹은 돈이 4천만원이 안되면 불구속이라고 발빼버리는 법정의(正義) 등 달라 진 것이 많지 않다.

제2건국이 바람을 맞아 마땅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진정한 제2건국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어제 내린 흰눈이 가르쳐주고 있다. 모든 더러움과 낡 은 관행을 남김없이 덮어버리고 눈처럼 하얀 터전위에서 새로운 색깔을 칠해 나가듯 나라를 다시 세워가야 비로소 제2건국은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건 국 주체인 DJ정권 스스로 먼저 눈처럼 하얀 캔버스가 되라 그러면 국민들은 보다 아름다운 물감으로 그대들을 역사에 남는 정부로 채색해 줄 것이다. 金 廷 吉〈비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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