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영화 어제와 오늘-(10)광복영화 '자유만세'

장개석 총통 관람후 휘호 1945년 8·15해방으로 기쁨에 들뜬 우리 영화계의 가장 큰 수확은 소위 광복영화로 일컬어지는 '자유만세'(최인규 감독)의 탄생이었다.

최완규, 인규 형제가 설립한 고려영화사의 첫 작품으로 4개월이 넘는 제작끝에 1946년 10월 개봉된 '자유만세'는 해방후 본격적인 극영화로 우리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그려 관객의 대단한 호응을 얻었으며, 대만으로 수출돼 장개석 총통이 영화를 본후 '자유만세 한국만세'라는 휘호를 내렸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이 영화의 각본·주역을 맡은 전창근은 이미 해방전부터 이 작품을 마음에 두고 메모를 해두었다는 뒷얘기도 있다. 일제치하에서 '복지만리' 영화의 메가폰을 잡기도 했던 그는 이 영화에 실제이름으로 출연, 일경에게 쫓기다 자신을 숨겨준 간호원 출신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장렬히전사하는 독립투사역으로 심금을 울렸다.

황려희 유계선 전택이 등이 함께 출연한 이 영화에는 후에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는 영화인들이스태프로 참여해 눈길을 끈다. 신상옥 감독이 이때 미술을 담당했고, 1950년대 '자유부인'을 연출,멜로영화의 붐을 일으키는 한형모 감독이 촬영을 맡았다.

'자유만세'보다 한달쯤 앞서 개봉된 '똘똘이의 모험'(김영수 원작)은 비록 어린이영화였지만 해방후 제작된 극영화 1호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KBS라디오의 어린이 연속극을 영화화한 것으로 초등학생인 똘똘이와 복남이가 간첩으로 활동하던 쌀 도적단을 발견, 경찰과 함께 이들을 체포한다는 내용. 향토출신 이규환 감독의 연출로 당시장택상 수도청장과 초등학생들이 직접 출연하고 성우들이 후기녹음을 맡아 화제가 됐다.

미군의 서울 입성 등 뉴스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도 해방직후인 1945년 9월 24일부터였다. 윤백남을 본부장으로 하는 '조선영화건설본부'가 설립돼 미군정청의 한국 관련 보도 등 국내외 뉴스를 영화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金英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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