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의 건축미를 찾아서-부석사 무량수전

99년은 문화관광부가 정한 '건축문화의 해'. 건축은 모든 문화생활의 바탕이자 인류예술의 꽃이다. 그만큼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장인이 온갖 정성을 기울여 지어낸 건축물은 아름답다. 지극히아름다운 예술품에는 지극히 깊은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단지 외양에서 풍겨나오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그 속에는 시대정신과 사상이 녹아있고 과학적인 논리와 미학의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리건축의 아름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절제된 선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져내는 아늑함과 정교함등쉬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움이 살아숨쉬며 독특한 공간을 일궈내고 있는 건축물들. 모진세월을 이겨내고 오늘을 살아 숨쉬는 우리건축의 백미이자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찾아나선다.

영주 부석면 봉황산 기슭에 내려와닿는 12월의 햇살이 따스하기만하다. 소백에 드리운 황량한 겨울풍경은 차라리 눈부심이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바람소리, 고즈넉한 산사의 그림자…. 온갖 자연의 요소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장면장면들이 눈을 찌른다. 어떤 솜씨있는 화공의 그림이 이와같을 수 있을까.

부석면 북지리 화엄종찰 부석사(浮石寺)를 찾아들면 먼저 아늑함이 온몸을 감싼다. 비바람에 푸석해진 해쓱한 기둥이 정겹고 범종각 흙빛 아홉돌계단밑에서 바라본 낡은 안양루(安養樓)가 극락처럼 느껴진다. 안양루에서 내려다본 소백의 연봉들과 의젓하고 너그러운 자태로 서있는 당우들의표정이 살아있다. 마치 정원에 선 것처럼 모든 풍경들이 눈밑에서 살아 움직여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문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야말로 선경(仙景)이다.

국보 18호 '무량수전'(無量壽殿)은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불을 모신 전각이다. 고려중기목조건축으로 고려시대 건축문화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손꼽힌다. 우리 겨레가 보존해온 목조건축물중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로 꼽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지붕 추녀의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가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다. 작고한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선생은생전에 "갖출 것만 갖춘 절제미와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고 했다.

7세기후반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고려 현종때 중창했으나 공민왕 7년(1358년)에 화재로 소실됐다. 1916년 무량수전 해체수리과정에서 발견된 묵서에 우왕 2년(1376년)에 재건된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이보다 1백년내지는 1백50년정도 앞선 13세기 고려중기 건축양식이그대로 남아있는 우수한 목조건물로 평가되고 있다. 무량수전의 건축양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오래된 목조건물인 안동 봉정사(鳳停寺) 극락전보다 한단계 발전된 주심포(柱心包)형식으로 가구(架構)방법과 세부수법이 정연하다. 장식적인 요소가 많지않고 직선재(直線材)가 중첩돼 드러난내부천장공간은 장엄함 그대로다.

무량수전의 평면구성은 정면 5칸(18.7m), 측면 3칸(11.57m) 규모. 초석위에는 눈으로 보기에도 현저한 배흘림기둥을 세웠다. 지붕하중을 기둥으로 모으는 공포(木共包)가 기둥위에만 배치된 소위주심포 양식의 단층이다. 기둥사이의 주칸거리가 크고 기둥높이도 높아 건물전체가 당당하고 안정감이 넘친다. 팔작형식의 지붕은 물매가 후대 건물에 비해 완만하고 몸체와의 비례관계가 잘조화돼 안정감을 주고 있다.

무량수전에는 눈여겨 볼 것이 많다. 보통 건물중앙보다 귀부분의 처마끝이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안허리곡(曲)과 기둥위쪽을 내부로 경사지게 세운 안쏠림, 건물 귀부분의 기둥높이를 중앙보다높게 처리한 귀솟음, 기둥의 배흘림, 항아리형 보등 의장수법이다. 이같은 수법들은 착시에 의한왜곡현상을 막기위해 고안된 고도의 기법. 기둥머리가 넓어보이는 착시현상을 막기위한 배흘림은강릉 객사문 다음으로 정도가 심하다.

건물내부로 들어서면 후대의 건물과 달리 대들보 위쪽으로 천장을 막지않아 지붕 가구가 잘 보인다. 굵고 가늘고 길고 짧은 각각의 부재(副材)들이 서로 조화있게 짜맞춰진 모양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마치 고저장단의 운율마저 느껴진다.

천장을 노출시킬 경우 부재를 아름답게 디자인하고 정확하게 짜맞춰야하므로 품이 훨씬 더 들어가는데도 이런식의 건물을 지은 옛 대목들의 정성과 솜씨가 어떠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이중으로 건 대들보와 종보가 그렇고 장여와 초방이라는 가느다란 부재를 겹겹이 사용해하중을 이기도록 보강해놓아 옛 선인들의 구조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오랜 경험이 빚어낸 건축미학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건물내부의 열주(列柱)는 장엄한 공간미와 깊이를 더해 장인의 뛰어난감각이 손끝에 잡힌다. 다만 원래 내부바닥에 푸른 유약을 바른 녹유전(綠釉塼)을 깔아 매우 화려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자리가 덮여 볼 수 없는게 유감이다.

우리 고건축의 아름다움은 '자연닮기'에서 찾을 수 있다. 지붕선에서 문살, 주춧돌까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이러한 우리 건축물에 담겨있는 아름다움의 뜻을 무량수전에서 명확히 찾을수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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