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의 전통 美-징

햇볕 따스한 돌담에도, 정갈한 장독대에도, 백자의 선에서도 우리만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는 참 오랫동안 이들을 보듬고 왔다.

그러나 거세게 밀어닥친 서구문명의 세례속에 우리는 이들 전통미들을 거의 상실해가고 있다. 그만큼 '우리 것'에 소홀했다고나 할까. '문화'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때 한국미의 원형들을 새롭게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징이잉 징-"

새벽을 알린다. 가슴을 쳐 피를 퍼내는 방짜놋쇠의 울음들. 이토록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쇳소리가 있을수 있을까.

꽹과리가 잔가락을 친다면 징은 매 장단 첫박에 쳐 소리흐름을 잡는다. 소리가 웅건(雄健)하기에그렇다. 그래서 목소리 높여야 하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징이 울린다.

"소리가 깊어요""무슨 소리가요?""그냥 소리가 말입니다""어떻게 깊은데요?""그냥 깊어요"전문가조차도 덮어놓고 "깊다"고만 할 수밖에 없는 여운의 파상들.

징은 깊고 웅장하게 울면서 뒤끝이 황소울음처럼 채어 넘어가야 제격이다. 메질(망치질)에 따라종이 되기도 하고 징이 되기도 한다.

동라(銅金羅), 정(鉦), 대금(大金). 이름은 갖가지지만 징은 가장 원시적인 모양을 고집한다. 전(테두리) 없는 대야모양.

저대도록 투박한데 무슨 소리 들었으랴. 그러나 앞망치 곁망치 센망치에 수백번의 메질과 담금질을 견디면 징은 황소울음을 운다.

징에는 절제의 아름다움이 있다. 아무런 장식이나 기교도 없이, 소리라야 긴 한 울음밖에. 채도헝겊이나 짚을 틀어감은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쇠를 다스리고, 불을 다스리고, 징장(匠)의 마음까지 다스릴줄 아는 절제가 녹아있다. 분(分)을 알고 오랫동안 인고하는, 그러다 어느순간 포효하는 우리 심상의 원형이다.

언땅을 녹이려는듯 징소리가 맹렬히 달려온다. 새해 첫 새벽에.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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