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치개혁, 유권자가 이끌어내야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마지막 조건인 한국 정치개혁. 2000년을 불과 한 해 앞둔 올 해, 우리는 이 절체절명의 화두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정치권은 그러나 여야 정권교체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목청만 높였을 뿐 이렇다할 가시적인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국민은 이제 이같은 정치권에 분노를 넘어 체념과 포기에 다다른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새해를 맞아 정치개혁의 당위와 과제를 점검한다.

여야가 연초부터 '국회 529호실 사건'을 놓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국가기밀을 탈취한 국기(國紀)문란", "헌정질서를 파괴한 정치사찰"이라는 여야의 상반된 시각이말해주듯 단 한치의 양보도 없이 평행선만 긋고 있다.

헌정 50년, 우리 정치는 사실상 이같이 평행선을 긋는 양태만을 보여주었다.

유권자-정치권, 여-야정당 등 각 정치주체간에 서로 접점은 없이 평행선만 그려왔다. 또 정치 내적으로는 투입된 비용과 산출된 생산이 너무나 벌어지는 격차를 보였다.

우리 정치가 사회를 후진시키는 장본인이라는 낙인을 받게된 근원적인 이유다.정치의 고비용.저효율구조는 새삼스런 얘기조차 아니면서도 실상을 알수록 그 폐해에 놀라게 되는 부분이다.

우선 비용문제. 95년 현재 우리나라의 유권자 1인당 국고보조금 부담액은 1천8백85원이다. 이에비해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2배 가까이 많은 프랑스는 1천2백원에 불과하고 이웃 일본도 1천8백75원으로 우리보다 적다.

생산성을 보면 밑빠진 독에 세금을 쏟아붓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14대 국회를 통틀어 정부입법안은 5백81건인 데 반해 의원입법안은 고작 3백21건.법안심의 결과는 더욱 실망스러워 제출된 법안의 94%이상이 만장일치로 처리됐다. 회기 막판에무더기로 방방이를 쳐 넘겼음을 보여주는 증좌다.

대화가 아닌 여야간 대립정치는 529호실 사건에서 보여주듯 우리 정치의 숙명적 폐해였다. 그 어떤 민생이익보다 정당, 정파의 이익이 우선해서 다뤄졌을 뿐이었다.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국회가 상임위도 구성하지 못하고 몇달씩 공전한 이유는 여야 정쟁때문이었다.

그 결과 한 시가 급한 민생법안들은 하릴없이 서랍속에서 썩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와 정치권의 평행선을 긋는 현상은 바로 우리사회의 정치혐오증을 부추겼다.유권자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치참여에서 소외됐고 정치권은 유권자를 표 찍어주는 사람들로만 치부했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정치소외를 잘 보여주는 것은 주요 정당의 당비납부율.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97년 국민회의의 당비납부율은 겨우 15.9%이고 한나라당은 이보다도 적은11.3%에 불과했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 정당들이 당비로 수입의 30~50%를 충당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정당의 뿌리가 얼마나 취약한 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당비내는 당원이 적은 만큼 당원들의 권한은 없다시피 하다. 각종 선거의 후보를 뽑는 권한은 당원들이 아닌 당내 보스가 전적으로 행사한다.

이같은 상의하달식, 중앙집중식 공천권 행사는 정치인들이 유권자보다 보스를 더 두려워하고 더따르게 만들었다.

현재 정치권의 개혁작업은 대체적인 윤곽만 잡혀있을 뿐 세부적인 합의는 보지 못한 상태다.국회 상시개원, 예결위 상설화, 인사청문회 도입 등에 대해선 각 당의 의견이 대체로 수렴됐으나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의원정수 감축,정치자금 투명화 방안, 지구당 폐지 여부 등 핵심사항에 대한 이견은 여전히 크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을 통해 "대의정치를 벗어나 직접정치, 참여의 정치로 가야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개혁을 정치인에 맡길 게 아니라 유권자들이 이끌어 내야 할 이유가여기에 있다.

지금처럼 유권자가 무시당하는 대의민주주의는 이미 심각한 위기를 드러냈다. 정치인 전유물인정치를 유권자들이 돌려받아 수요자 중심의 정치 패러다임을 구현해야 한다는 얘기다.최근 인터넷 등 가상공간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자민주주의운동을 비롯한 유권자 개인 및 단체들의 활발한 정치참여는 직접정치로 가는 작은 예라고 할 수 있다.

〈李相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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