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C 정치 바꾸자-달라져야 할 국회의원

지난 98년 한해, 우리 국회는 310일이라는 최장회기 기록을 수립했다. 겉보기로는 거의 연중무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본회의가 열린 날은 올 초까지 계속된 199회 임시국회 회기까지 합해도60일이 채 안됐다.

그나마 회의가 열리는 날에는 밀린'숙제'를 한꺼번에 하느라 졸속진행이 불가피했다. 5일 열린 본회의에서는 무려 70건을 처리하는 데 단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참석했던 여당의원들은 물론 참석하지 않은 야당의원들도 안건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 나머지 기간은 국회는 열렸지만 정쟁으로 날을 지샜다. 의원은 있어도 국회는 없는 비정상상태가 지속됐고 개개인 모두가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의원들은 이리저리 몰려 다니며 눈치보기와줄서기에 바빴다. 한 여당의원의"이사갈 때 개끌고 가듯 한다"거나"장기판 졸다루듯 한다"는 자조처럼 국회의원은 머리 숫자를 채우는 도구나 거수기에 불과했다.

또 정치권 사정의 여파는 의원들을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게 만들었다. 그 때마다 "정치권이 바뀌어야 나라가 바뀐다"고 국회의원들의 자질부족과 함량미달을 지적하며 개혁대상 0순위로 지목했다. 이처럼"정치인과 정치는 3류도 아닌 4류"라는 말이 진부할 정도로 어디를 가나 국회의원들은 동네북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비난과 질책은 일견 타당성이 있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억울한'측면도 없지 않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의원은"왜 국회의원되려고 그 고생을 했는지 후회가 들 때도 적지 않다"면서도 "재선을 위해서는 평소의 소신보다는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공천권을 가진 지도부나 보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도록 돼 있는 정당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상의하달식 정당운영방식으로는 공천권자에게 미운 털이 박히지 않기 위해 줄서기를 할 수밖에 없고 보스의 뜻에 따라 돌격대도 됐다가 나팔수도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또 공천권자의 생각은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의원들을 몰개성화로 내몰고 있다. 배신자나 항명(抗命)시비를 피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소신은 헌 신짝이 되기 일쑤다. 더구나 바람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당공천이 아닌 무소속 당선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렵게 만들어 놓은 선거법도 이들을과잉충성경쟁에 나서게 한다.

유권자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지역구 행사에 자주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 "많이 컸다"라며 동네 여론이 악화되는 현실은 의원들로 하여금 "서울서 아무리 잘해도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믿음마저 갖게 하고 있다.

아무리 국회에서 출결상황을 체크, 이를 공개하고 시민단체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한다고 해도 지역구에 일이 있으면 만사가 후순위가 된다. 아예 지역구 민원해결사를 자처하는 의원들도 상당수인데 이들은 하나같이"가장 확실한 선거운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돈 문제만 해도 법과 제도는 현실과 너무 달라 국회의원들을'검은 돈'과 거래를 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대단한 재력가를 제외한 선량(選良)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지난 96년 4.11총선에서는최소 3억~5억원, 최고 50억원 이상으로 평균액수는 약 10억원에 육박하는 돈을 썼다는 것이 의원들의 고백이다.

국회 사무처의 한 간부는 "국회의원이 달라지는 것이 요체이긴 하지만 환경이 변하지 않는데 국회의원만 달라지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정당구조와 운영방식, 유권자의 인식, 그리고선거제도와 문화 등 정치를 형성하는 여건의 변화가 정치선진화의 요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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