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해 여성들에게 띄우는 억척엄마의 편지

1999년, 새로운 한해가 시작됐습니다.

지난 일년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집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직장에 잘 다니던 아이가 몇달동안 월급도 받지 못한채 회사를 그만 두었고, 여고생의 꿈을 펼치기도 전에 학교를 쉬어야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 알게 됐습니다.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용기를주는 이웃의 따뜻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IMF한파가 우리 살림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노숙자가 되어 거리에서 방황하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지하철 시멘트 바닥에서 신문지를 이불삼아 잠든 사람, 한끼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무료급식소 앞에서 줄을 서있는 사람,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마음이 그렇게 아팠습니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그 불청객이 우리에게도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생활터전 옆에는 하나둘씩 포장마차가 들어왔고 수입이 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들에게자리를 옮겨달라고 부탁을 했었고 때로는 말다툼도 했었습니다.

"남편이 실직을 당하고 아이들과 살아야하기에 장사를 해야겠다"는 그들에게 더이상 내말만 할수 없었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갓난 아이를 업고, 붕어빵을 굽는 새댁, 장애인 남편과 물건을 파는 아주머니, 모두가 먹고 살기위해 생활전선으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한사람의 여성이기에 앞서 아내와 어머니였기에 거리로 용감하게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입이 적어졌다고 그 사람들을 원망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처음에 답답하던 마음이 서로 어려움을나눠주고 따뜻한 말이 오가는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왔습니다.

모자라는 생활비는 큰 아이가 보충해주었습니다.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아이들은 용기를 줍니다."무엇을 해야할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는 해야할 일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예요" 하는 기특한 말로 어미맘을 위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했습니다. 오늘 힘들어도 내일이 더 행복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분명 좋은 일들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버겁고 힘들지만 새해에는 사랑하는 아이들과 더 마음을 비우고 지혜롭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우리, 모두 열심히 살아가지 않을래요.

1999년 1월 6일 이영희

(이영희씨는 98년 제15회 매일신문 여성생활체험기 최우수상 수상자로 포장마차를 하며 살림을꾸려가는 억척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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