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전진 기지, 구미 국가산업단지. 30년 가까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던 곳.수출입국의 '신화'를 만들어 낸 그 구미가 '빅딜 한파'로 깊은 시름에 잠겼다.구미의 상징인. 수출산업탑. 색바랜 초췌한 모습이 구미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90년대 초까지 컨테이너 차량이 쉴 새없이 드나들던 구미 공단. 이젠 그런 활기를 더 이상 찾아 보기 어렵다.
8일 오후 취재팀이 먼저 찾은 곳은 구미상공회의소 회의실. 때마침 구미경제살리기비상대책위원회 임원회의가 열렸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모든 시민의 역량을 모아 구미 공단을 사수합시다"
"대우전자와 LG반도체가 빅딜로 문 닫으면 지역경제는 끝장입니다"
운동 방향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열의는 모두가 같았다.지난 연말 1만여명이 모인 '빅딜 반대 시민대 궐기대회'는 구미 경제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잘 설명해 준다. 구미에서 1만명이 모인 집회가 열린것도 처음이다. 특히 노인회, 상가번영회까지모두 200여 민간 단체가 참여하는 비대위가 구성됐다는 것은 구미시민이 이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무엇이 구미시민들을 이토록 흥분하게 만들었을까. 비대위 김석호 사무국장은 이렇게 설명한다."대우전자와 LG반도체 공장이 문 닫으면 3백여 협력업체들도 부도 위기에 놓입니다. 이런 구조조정이 30대, 60대 그룹까지 확산되면 대기업 중심의 구미 경제는 끝장입니다"
빅딜은 국가경제의 구조개선 과정에서 불가피 한 것 아니냐는 취재팀의 질문에 김국장은 지역간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반박했다.
"빅딜의 당위성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30년 동안 투자한 수출기지인 구미공단을 위축시키면서 다른 지역에 신규 공단을 조성하고 대기업들을 유치시키려고 하는 것은 구미시민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빅딜 한파는 수출 부진에다 내수 침체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구미공단에 결정타를 입히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구미산업단지의 총 수출액은 104억7천400만달러. 지난 97년 같은 기간 보다 12%나 줄었다. 고용 인구는 지난해 11월까지 6만4천930여명. 이 역시 97년 보다 11.8% 감소.이미 1년 동안 구미지역에는 9천여명의 실업자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이번 빅딜 추진으로 해당 사업장 종사자 4천800여명과 300여개 협력업체의 종사자 5천여명 등 1만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까지 합하면 그 수는4만여명. 최근 경제난으로 구미공단 434개 입주 업체 가운데 46개 업체가 휴·폐업 상태다.구미상의 곽공순 조사부장은 "빅딜 대상이 된 2개 사업장은 구미경제의 핵"이라며 "우리나라 수출의 6~7%를 담당한 구미공단이 해체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공단 입주업체 뿐 아니다. 공단 때문에 먹고 사는 주변 상가는 장사가 안돼 벌써 문을 닫은 점포가 수두룩하다.
부도로 공사가 중단돼 앙상한 철골구조만 덩그렇게 남은 공단 입구의 대형 오피스텔 건물은 쇠락하는 구미 경제의 단면.
취재팀이 점심을 먹은 송정동에 있는 식당 주인은 "저녁은 물론이고 점심시간에도 손님이 없어점포세도 못 낼 형편"이라며 "빅딜이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까지 못살게 만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우영 구미시중소기업자문협의회 회장은 "불안합니다. 다음엔 또 어떤 한파가 몰아 닥칠지…" 정회장은 "대기업 빅딜은 결국 협력 업체인 중소기업까지 도산으로 몰고 갈 것 입니다. 중소기업중심의 경제 정책을 펴겠다는 정부 방침을 어떻게 신뢰하겠습니까" 취재를 할 수록 구미공단의문제는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대우전자 구미공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노사 분규 현장을 방불케 하는 수 십개의 울긋불긋한 '빅딜 반대' 현수막이 요란했다.
얼마전만 해도 1천여명이 땀흘려 일했다던 TV공장. 모든것이 '올 스톱'이었다. 파업을 한 것은아니었다. 한달 전 삼성전자를 경영 주최로 빅딜 대상이 된 후 내수는 물론 해외 바이어들의 계약 취소로 수출물량이 30% 이상 줄어 그만큼 일손이 놀 수밖에 없다.
잠시 후. 대구집회를 끝내고 돌아온 근로자들을 만났다.
"90% 이상을 수출한 탄탄한 기업이 왜 빅딜 대상이 됩니까. 우리 회사는 이미 3년 전 부터 다른곳보다 앞서 구조조정까지 했습니다" 근로자 김모씨(31)는 격분했다.
"삼성측에서 고용승계를 약속했지만 어떻게 믿습니까.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될 겁니다. 올 봄에 결혼할 계획이었는데…" 김씨는 긴 한숨을 내 뿜었다.
대우전자비상대책위원회 김상일 과장은 "삼성전자의 수원공장이 절반 밖에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데 대우공장을 가동시키겠냐"며 "수출주력인 대우와 내수 중심의 삼성을 통합한 자체가 잘못된빅딜"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장 입구엔 여성 노동자들이 기숙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일자리도 없쟎아요. 끝까지 싸워야죠. 목숨 걸고…" 영천이 고향이라는 최모(24·여)씨는 다부지게 한마디했다.
앰프에서는 우렁찬 노래가 흘러 나왔다 "자랑스런 노동자…" 마치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이들은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해거름에 도착한 LG반도체 공장은 의외로 차분했다. 1천400여명의 직원들은 묵묵히 일을 하고있었다. 그러나 불안스럽기는 마찬가지.
입구에서 마주친 박모(27·여)씨는 취재팀의 질문에 귀찮다는 반응부터 보였다. "빅딜의 희생양은결국 일만 해온 우리 같은 노동자들만 거리로 내쫓는 것 아닙니까"
구미공단의 위기론은 빅딜 이전 부터 시작됐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중부본부 관계자의 진단을 들어보자. "구미공단의 위기는 국가 주도의 규모 경제, 계획 경제 시대가 종말을 고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지난 71년 조성된 공단이 장년기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죠"이 관계자는 벤처기업 유치로 공단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구미시의 계획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생산기지인 구미에 연구인력이 어디 있나요. 교육과 연계해 우수 인재를 양성하는 일부터 다시출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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