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영화 어제와 오늘-(13)이규환 감독의 '춘향전'

1955년 개봉된 향토출신 이규환 감독의 역작 '춘향전'은 6·25전쟁으로 피폐해진 우리 영화계의중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해 1월6일 서울 국도극장에서 처음 개봉된 이 영화는 상영 20일만에 관객 10여만명을 동원하는기록을 세우며 공전의 히트를 거뒀다. 당시 서울인구는 2백여만명.

서울 변두리는 물론, 인천 수원 등지에서도 트럭을 타고 단체 관람객들이 몰려들어 극장 주변 교통이 완전 두절됐고, 밀리는 관객들로 객석의 뒤쪽에 붙어있는 어른 팔뚝만한 쇠파이프가 엿가락처럼 휠 정도였다.

대구에선 기마경찰이 동원돼 몰려든 군중을 해산시켰고, 광주에선 관객들이 영사실에까지 들어차소동을 빚는 등 2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한국 불후의 고전인 '춘향전'은 이미 1923년 일본인(早川孤舟)에 의해 무성으로, 1935년 이필우,명우 형제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로 제작됐으나 사극영화 붐을 일으킨 이규환 감독의'춘향전'의 인기를 따르지는 못했다.

이 작품은 원작에 연연하지 않고 젊은이들의 사랑을 시적 정취가 풍기는 안정감있는 영상미로 그려 관객을 사로잡았다.

춘향과 이도령역을 맡은 조미령과 이민은 이 영화 한편으로 하루아침에 대스타가 됐으며, 전택이(방자), 노경희(향단), 이금룡(변학도), 석금성(월매) 등 호화배역들이 열연을 펼쳤다. 춘향이 바닷가에서 변사또에게 쫓기는 옥중 환상장면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평가받고 있다.가창 냉천에서 촬영된 '춘향전'은 여러가지 재미있는 뒷얘기를 남기고 있다. 당시 이규환 감독은스태프 등 50여명의 대부대를 이끌고 냉천에서 민박을 하며 큼직큼직한 세트를 세웠는데, "큰 공사가 시작됐다"고 잘못 알려져 대구의 유명한 술집들이 냉천에 대형 천막을 치고 분점을 차리기도 했다고.

청순한 여인역의 대명사로 불린 조미령은 키가 작아 바닥을 10cm나 높인 신을 신고 이민과 연기호흡을 맞춰야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으로 제작에 참여한 이철혁이 두사람의 관계를 의심, 목침으로 조미령의 머리를 내리쳐 기절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고 이규환 감독은 제작 후일담을 남겼다.

〈金英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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