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불조심

나의 시골집 부엌문에는 '불조심'이라는 글씨가 세로로 씌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습자 삼아내가 쓴 것이다. 습자 담당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이 말보다 더 소중한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가 심심찮게 경험했던 재해들은 실상 이 말을소홀히 한 탓이다.

부모들은 대개 제 자녀의 가슴에는 '불'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적으로 말해서 '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들이란 없다. 다만 부모 앞에서 그 '불'을 고양이 발톱처럼 감추고 있을 뿐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부모 앞에서 착하지 않는 자식은 없고 자식앞에서 점잖지 않는부모는 없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부모는 제 자식을 제일 잘 모르고 자식은 제 부모를 제일잘 모르는 법이다.

그것은 지나치게 가까이 있어 우리의 눈을 현혹하기 때문이다. 이는 숲속에서는 옹근 숲의 모습을 볼수 없는 이치와 같다. 굳이 묵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산의 모습을 보려면 평지로 내려가야하고 평지의 모습을 보려면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요즘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청소년 문제는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바로 우리 집 현관의 '불'일수 있다. 이런 인식만이 우리의 눈을 투명하게 한다.

불조심의 상책은 꺼진불도 다시 보는 일이다. 꺼진 불을 다시 보는 것은 기우라고 우길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꺼진불은 단지 경험적 인식일뿐, 확인하기 전에는 우리의 실증적 사실이아니다. 그러므로 다시 보아야 한다. 만에 하나, 자녀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 한 줄기 '불'이 우리의 집을 결딴내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하여. 알다시피 우리의 삶에는 리허설이 없다.〈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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