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과 공간 한국건축의 미학-(4)계산성당

계산성당(대구시 중구 계산동 2가 71)은 신자·비신자를 막론하고 대구사람들에겐 고향처럼 푸근하고 정겨운 곳이다. 매일같이 조금씩 조금씩 얼굴이 바뀌어지는 이 분지의 도시에서 100년 가까운 세월동안 변함없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 그래서 오랜만에 대구를 찾아온 사람들은 여기서 사라진 고향의 옛모습을 찾는다.

세그루 늙은 히말라야시더가 감싸고 있는 커다란 십자가상을 지나면 이내 마주치게 되는 붉은 벽돌 성당. 경상도 사투리로 '뺏죽집'(뾰족집)으로 불렸던 이 성당은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며,1981년 문화재 사적 제29호로 지정된 유서깊은 건축물이다.

1899년 프랑스인 로베르(한국명 김보록) 신부는 지금의 계산성당터에 한국식 십자형 목조성당을이곳에 지었다. 그러나 낙성한지 1년만인 1900년 대구에서 일어난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화재가발생, 성당이 불타버렸다. 슬픔속에서도 로베르신부는 십자형 성당보다 더 큰 규모로, 결코 불에타지 않는 석조성당을 짓기로 결심했다.

당시만 해도 양옥을 짓는 건축전문가가 없었던터라 멀리 중국(淸)에서 석공과 목수, 미장이 등 19명, 서울에서 중국인 벽돌제조업자 9명을 데려와 즉시 성당 신축공사를 시작했다. 당시 중국인 벽돌공들이 현장에서 직접 구워 만든 벽돌종류는 20여가지나 됐다고 한다. 국내에서 구하지 못하는스테인드 글라스와 함석류, 창호철물 등의 자재는 프랑스와 홍콩 등지에 주문했다.

이렇게 해서 착공 1년여만인 1902년 5월, 대구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 완공됐다. 이듬해 11월1일 뮈텔주교의 주례로 가진 축성식에서는 사방 200리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어와 생전 보도 듣도 못한 진기한 뾰족집을 구경했다.

계산성당은 서울의 명동성당과 더불어 한국 근대건축의 기점이 됐다. 무엇보다 대구지역의 건축계에 계산성당이 끼친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지대했다. 영남대 건축과 김영태교수는 "전통 목조양식으로 일관된 이 지역에 프랑스서 고딕양식의 건물이 들어섰다는 것은 한국 근대건축사에서 볼때 서구식 건축의 도입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또 "계산성당은 대구 최초로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내력벽식(내부물체의 질량이 집결해있다고 여겨지는 점, 즉 질점 상호간의 힘을 이용한 건축) 구조의 건축물이자 국내에서는 찾아보기힘든 정면 쌍탑의 고딕양식"이라고 특징을 말하고 "평면구성은 전형적인 고딕양식이면서 구조 및세부적인 건축양식은 로마네스크양식에 가까운 독특한 건축양식을 가졌다"고 말했다.

재단법인 대구구(區) 천주교회 유지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계산성당은 지상 1층에 건축면적 927.3㎡, 연면적 991.98㎡의 규모. 전체적인 외관은 화강석 기초위에 붉은 벽돌을 주 구조재로 하여 지어졌다.

그러나 버트레스(Buttress: 버팀벽, 지지물)와 정면의 출입구, 천장 리브(Rib: 활의 등 또는 반달처럼 돔형의 곡선면을 형성한 천장), 창문의 아치윗부분 등에는 부분적으로 회색의 이형(異型)벽돌을 사용, 구조체로서의 역할과 함께 붉은 색과 회색의 멋진 색감조화 등 시각적으로 매우 세련된장식성이 돋보인다. 지붕은 아연으로 만든 박공지붕(지붕면이 양쪽 방향으로 경사진 지붕. ∧형)이었다.

건물의 구조적 특징을 보면 평면상으로는 라틴 십자형으로 3랑식 열주(3줄의 기둥)의 아케이드(Arcade: 아치기둥의 열)를 이루고 천장에 의해 네이브(Nave: 교회의 본당)와 아일(Aisle:교회 회중석의 통로)이 뚜렷하게 구획돼있다.

정문의 출입구는 서쪽 정면의 나르텍스(Narthex: 교회건축에서 정면입구와 네이브 사이에 설치된현관홀)에 위치해 있고 나르텍스의 좌우에 있는 종탑에는 각각 8각형의 고딕 첨탑이 하늘을 향해기도하는 자의 모습처럼 서있다. 건물의 내부는 높고 곡선으로 이루어진 천장과 회색벽돌의 고딕식 기둥들, 스테인드 글라스 창들로 구성됐다.

1911년 대구대교구가 설정되면서 계산성당은 주교좌성당이 됐고 신자수가 증가하면서 건물 뒤편동쪽으로 날개처럼 건물을 달아 증축했다. 또 종탑을 배로 높여 1918년 2월에 준공했고 그때의모습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계산성당의 건축적 특징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하며 동시에 범접할수 없는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있다. 그러면서도 누구라도 이곳에 오면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푸근함을 느끼게 한다. 종교적 건축물인 성당이 갖춰야할 경건한 분위기를절묘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구사람들에게 각인된 계산성당의 가장 큰 이미지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특히 정면 출입구위 박공부분의 둥글고 커다란 장미창과 좌우 익랑 박공부분의 장미창은 자칫 무겁고 엄숙한 모습으로만 보여질 수 있는 성당의 이미지에 화려한 미적 감각을 더해주고 있다.

또한 건물 양쪽벽, 화려한 원색으로 그려진 12사도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계산성당의 백미로 꼽힌다. 성경의 중요한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이 색유리창은 보는 이에게 성스러움과 평화,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특히 세상의 모든 불들이 켜지는 시간, 어둠속에서 유독 빛나보이는 아치형의 창들은 고독하고상처입은 자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절대자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한때는 근방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던 계산성당도 1백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은 모습이 바뀌었다.

수십층짜리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성당건물은 나지막해졌고 풍우에 묵은 때가 낀 성당 외벽은 몇년전에 살짝 깎여졌으며, 지붕도 동판으로 바뀌어졌다. 오랜 세월이 남겨놓았던 흔적은 다소 희미해졌지만 그러나 붉은 벽돌건물이 주는 따스한 이미지는 변함이 없고 낮아진 지붕은 겸손한 자의모습을 보여준다.

계산성당은 그 독특한 외관만으로도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언제나 그 문을 들어서기만 하면 평안을 찾을 것 같은 '영원한 쉼터'로 비쳐진다.

〈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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