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북구 칠성시장 부근의 한 허름한 슬레이트 집. 겉보기엔 평범한 가정집이지만 내부는 1평남짓한 단칸방들이 벌집처럼 빽빽하게 마주보고 있는 여인숙이다. 이곳을 이용하는 '가출 가장'들은 간판도 없는 이런 무허가 여인숙을 '무하숙집'이라고 부른다.
20일 오후3시. 문이 열린 무하숙집 한 방안엔 김종수(가명·18)군이 혼자 TV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칫솔 팔러 나가셨어요" 저녁때면 무료급식소를 전전하고 낮에는 한달째 라면만 먹고 있다는 김군은 2년전 학교도 그만두고 주민등록 말소자인 아버지와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다.또다른 무하숙집에서 만난 박철진(40·가명)씨.
이날도 어김없이 새벽5시30분 칠성시장 인력시장으로 나갔었지만 허탕만 쳤다는 박씨는 넉달 전대구역에서 노숙을 하다 2백만원에 주민등록을 팔았다고 털어놨다. 오는 23일 내야할 방값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는 박씨는 병원영안실, 만화방 등 새로 기거할 곳을 찾고 있다.무하숙집은 날품을 파는 노숙자들이 푼돈을 모아 한겨울 찬바람을 피하는 보금자리다. 1평 크기의 방 하나에 인원 제한 없이 한달 사글세가 9만~12만원. 연탄 난방을 하려면 3만원을 더 내야한다.
최근 대구시내 노숙자 실태조사를 벌인 노숙자지원센터 '길찾는 사람들'은 칠성시장, 대구역, 동대구역 등 50~60여개의 무하숙집에 기거하는 '예비 노숙자'들이 2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있다.
무하숙집 이용자들의 사정은 일반 노숙자보다 조금도 낫지 않다. 상당수가 주민등록을 말소당해취업은 물론, 생활보호사업 등 각종 복지시책의 대상자로도 선정될 수 없다.
주민등록증도 다시 받고 무료로 머물 수도 있는 노숙자쉼터는 이미 만원인데다 역 주변을 얼쩡대다간 졸지에 시립희망원으로 실려가 부랑인들과 뒤섞이기 십상이다. 대구시는 지난해 11월20일부터 대구역 등지에서 상담을 통해 지금까지 60여명의 노숙자를 시립희망원으로 보냈다.노숙자쉼터의 한 관계자는 "대구시는 노숙자쉼터 이외의 노숙자를 인정하려하지 않고 있다"며 "일단 노숙자를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해놓고보자는 임시방편보다는 사회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무하숙집 이용자 등 예비노숙자들에 대한 실태파악 및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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