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사회적 밀레니엄 버그

하루가 멀다하고 밀레니엄 버그 문제가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Y2K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버그는 컴퓨터가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잠재적 난제를 일컫는다. 2000년 1월1일 컴퓨터가 2000을 인식하지 못해 오작동할 경우, 수도나 전기가 중단되고 항만이 운행중지되며엄청난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밀레니엄 버그가 21세기로 이행하는 길목에서 제기되는 기술적 난제를 말한다면, 나는 기술적 밀레니엄 버그 보다 더욱 위협적인 사회적 밀레니엄 버그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재난을 회피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가 얼마나 20세기적인 과거를 성찰할 수 있으며, 나아가21세기에 부응하는 사고, 문화, 의식을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기말의 현장에 서서 성찰해야 할 20세기의 그늘진 측면들은 너무도 많다. 예컨대 20세기의 잔악했던 집단학살의 경험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돌이켜 보면 20세기는 달나라 탐사 성공, 복제양돌리의 탄생 등 눈부신 기술적 진보를 이룩한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치즘에 의한 유태인 집단학살, 캄보디아에서의 '킬링필드'사태, 보스니아의 인종청소 등 증오와 적대, 집단학살로 얼룩진시대였다.

그런 점에서 20세기는 문명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야만의 시대였다. 그러나 문제는 인류가 20세기의 야만성, 인종적 증오와 적대의식을 탈각하지 않은 채 21세기를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또한 우리는 20세기적인 냉전적 대결의식을 그대로 안고 21세기로 나아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20세기는 냉전적 대결과 적대의 시대였다.

적대체제와의 대결이라는 명분 속에서 자기 체제 내부에서 이루어진 엄청난 반인간적인 탄압과범죄가 정당화되었다.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에서도 매카시 선풍은 수만의 사람들을 테러와 투옥의 위험에 떨게 만들었다. 스탈린의 '피의 숙청'도 바로 '미제국주의로부터의 조국의 수호'라는명분으로 자행되었다.

그러나 탈냉전시대로 이행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냉전시대의 지적 유산을 그대로 끌어안고 살고있으며, 그 의식 그대로 버젓이 21세기로 향해가고 있다.

국내적으로 우리 사회는 개혁국면에 있다. 이 개혁은 일차적으로 군부정권시대의 유산, 그 유산에이해관계를 갖는 기득권세력을 척결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개혁은 국내적 차원에서만 사고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밀레니엄을 향한 우리 사회의 혁신이라는 차원에서 사고되어야 한다.이제 막 봉합된 최장집 교수 사건은 바로 그러한 20세기적 유산이 그대로 한국사회를 짓누르고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냉전시대의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지 않는 한, 사회적 밀레니엄 버그로부터 우리 사회가 자유로울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21세기의 거대한 도전을 눈앞에 두고도, 현재 우리는 개발독재의 유산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편으로 개발독재의 유산과 힘겹게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밀레니엄이 요구하는 새로운 의식과 체질을 만들어내는 지난한 동시적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새 밀레니엄까지 이제 겨우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사회적 밀레니엄 버그를 예방하기 위해서도,20세기의 부정적 유산 및 개발독재의 어두운 유산에 대한 폭넓은 성찰과 혁신의 시간을 가져야한다. 세기말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대망하는 시기가 아니라 지난 세기에 대한 성찰과 자기혁신의시기가 되어야 한다.

조희연(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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