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퇴출

지난해부터 우리의 귀에 가장 익은 말이 아마도 '퇴출'이란 말일 것이다. '구조조정'이란 말 끝에으레 따라 나왔던 말이 그 말이었다.

전에는 그런 말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던 우리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말은 웬만한 무지렁이가 아니면 다 아는 유명한 말이 되었다.

한나라 원제는 후궁의 화상을 보고 마음에 들면 불러서 총애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를 안 후궁들은 원제의 총애를 입기 위해 화공인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치는 일이 성행했다. 실물보다 더 잘그려달라고 청탁하기 위함이었다.

그 덕에 실제로 많은 후궁들이 원제의 총애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왕소군(王昭君)만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화공의 미움을 받게 된 왕소군은 빼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었으면서도 황제의 총애를 입지 못했다.

그무렵, 세력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 흉노와 화친의 필요성을 느낀 한나라는 후궁 하나를 흉노에게 시집보내기로 하고, 화상 중 가장 못나게 그려진 왕소군을 그 대상자로 선택했다. 이른바 '퇴출'인 셈이다. 원제는 흉노로 떠나는 왕소군의 실물을 보고서야 그녀의 자태가 출중함을 깨닫고크게 뉘우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올해도 대기업 간의 빅딜로 '퇴출'바람이 멈추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한비자의 '망징편(亡徵篇)'을보면 '신참의 신하가 진출하고 고참의 신하고 물러가거나 신하의 재능을 시험해보지도 않고 평판만으로 진퇴시키면 그 나라는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시점에서 음미해볼 만한 대목이다.

'퇴출'이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라면 어쩔수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왕소군 같은 인물이그 대상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왕소군에게 죄가 있다면 화공에게 청탁하지 않은 죄뿐이다.

진정한 실력자는 바탕이 요란하지 않기로 그 진가가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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