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해인사'를 떠올릴때 동시에 연상되는 단어는 팔만대장경이다. 대가람 해인사의 요체가 바로 팔만대장경이기 때문이다.
큰 법당 대적광전(大寂光殿) 뒤 24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서면 밑이 넓은 커다란 원모양의 입구를 가진 길고 웅장한 목조건축물이 나타난다. 우리민족의 걸작이자 국보 제52호인 고려대장경8만1천137판이 봉안된 장경판전(藏經板殿 또는 藏經閣)이다.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 앞에서는 절로 공손히 옷자락을 여미게 되는 곳. 인간의 위대한 정신문화가 세월을 건너뛰어 숨쉬는 공간이다.
앞쪽의 수다라장전(修多羅藏殿:下板堂)과 뒤쪽의 법보전(法寶殿:上板堂), 두채의 쌍둥이 건물이 평행을 이루고 그 사이 마당의 양끝에 자그마한 동.서사간판고(東.西寺刊板庫)가 서있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옆으로 긴 ㅁ자형이다.
거란의 침략에 맞서 만들기 시작한 대장경이 이곳에 옮겨진 시기에 대해 고려말이라는 설과 이태조 7년(1398)이라는 설이 있다. 아무튼 조선조 세조 3년(1458년)때 40간을 중창했고, 성종 12년(1481) 중건, 현재의 모습이 이루어졌으며, 성종 19년(1488) 30간을 개축하여 보안당(普眼堂)이라불렸다. 광해군 14년(1622)때 수다라장, 인조 2년(1624)때 법보전이 중수됐다.
수다라장과 법보전은 모두 정면 15간(199.87척), 측면2간(28.6척)으로 각각 165평의 규모. 건축적특징으로는 우진각(지붕 네모서리의 추녀가 처마끝에서 경사지게 오르면서 용마루에서 합쳐지는지붕형태) 홑처마(처마끝 서까래가 일단으로 된 처마)에 주심포(柱心包: 내부에 기둥이 없이 넓은공간을 만드는데 적합한 양식)식에서 초익공(初翼工: 전각이나 궁궐 등에서 포살미한 집의 기둥위에 얹히는 한개의 촛가지가 달린 나무)식으로 변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대부분 창건당시의 것이 그대로 남았다는 괴목기둥들은 5백~6백년의 풍상속에 깊은 주름살들이새겨져 있다. 기둥양식은 아래위가 약간 좁고 배부분이 통통한 배흘림기둥. 가야산의 해맑은 볕살에 그을려 희미한 황토색만이 남았지만 한때는 아름다운 붉은 색채로 빛났던 시절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장경판전 4채 건축물의 기둥은 모두 108개이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중생의 108 번뇌를 말함인가. 인조9년(1631)때 칠했다는 서까래의 단청도 거진 색깔이 바래어 희미하게 흔적만 남기고 있다.
건물벽은 사방 돌아가면서 아래위, 앞뒤로 크기가 다른 붙박이 목조 살창이 반복적으로 배치돼있다. 수다라장과 법보전 모두 건물 앞쪽의 경우 아래쪽 창이 1개당 문살개수가 22개 위쪽 12개이고 크기도 위창이 아래창의 3분의 1정도인 상소하대(上小下大)의 구조이다. 반면 건물 뒤쪽은위창의 문살이 21개 아래가 11개이고 위창이 아래창의 2배크기인 상대하소(上大下小)의 구조이다.
장경판전을 15년넘게 관리하고 있는 장주스님은 "이 창살구조야말로 자연의 순리를 최대한 활용한 독특한 사계절 통풍장치"라고 강조했다.
장경판전 뒤쪽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이 건물뒤의 큰 창을 통해 내부로 흘러들어오게 하는 한편 앞쪽에는 큰 창을 아래에 둠으로써 골짜기로부터 올라온 바람의 습기를 어느정도 차단함과 동시에건물내부로 들어온 공기가 실내를 한바퀴 돌아 고루 퍼진후 바깥으로 빠져나가도록 처리됐다는설명이다.
말하자면 결코 고장나지 않는'자연의 센서장치'가 장경판전에 설치돼 있는 셈이다. 가지런하게 배열된 문살들의 정갈함도 그러려니와 그것이 지닌 독특한 아름다움은 오후나절에 잠시 볼 수 있다. 가야산 이골 저골의 바람들이 제마음대로 넘나드는 목조 살창들 사이사이로 오후의 햇살이살짝 비켜들어간 장면에서는 어떤 현대미술가도 표현해낼 수 없는 기막힌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장경판전의 내부는 목제 경판을 보관하는 창고격인 건물이므로 매우 간단한 구조를 갖고 있다. 5량(梁: 서까래)에 소슬대공(臺工:마룻보위에 마루를 받쳐 세운 동자기둥)을 사용했고 그아래 초익공을 물려받쳤다.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된 연등천정이며, 한복판과 양쪽 가로 판가(板架)를 설치하고 경판들을 옆으로 세워서 보존하고 있다. 바닥은 흙바닥인데 오랜 세월 다져져서 시멘트바닥처럼 단단하다. 장경판전의 기초공사를 할때 이 일대의 땅밑에 숯, 석회, 소금, 모래 등을 섞어 깊게 깔아두어 실내습도가 높을 때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할때는 반대로 습기를 내뿜어 자연적으로 습도조절이 되도록 했다.
김무권 건축협회대구지회장은 "장경판전의 건축적 특징은 자연의 흐름을 종합적이고 과학적으로이용한 하이테크 인텔리전트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600여년의 세월을 견뎌온 장경판전은 그 뛰어난 문화적 가치로 인해 지난 95년 유네스코가 정한세계문화유산에 지정돼 더욱 빛을 발하게 됐다.
그동안 기와, 서까래, 일부 기둥 등 부분적으로 교체가 됐고 지난해에는 수다라장과 서사간판고의기와와 서까래를 갈았다. 올해는 법보전과 동사간판고의 수리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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