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오동나무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나즈막한 야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경관이좋은 편이다. 은행나무와 소나무가 집단적으로 숲을 이루고 있고, 가끔 덤불이 많은 오솔길을 아내와 함께 걷노라면, 보통 텃새들의 지저귐과 나무들의 독특한 향기와 빛깔만으로 계절의 미묘한변화를 느끼곤 한다.

또한 체육공원이 있는 동산의 언덕진 곳, 전망이 좋은 자리에는 나이를 알 수 없는 늙은 오동나무 두 그루가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햇살 밝은 휴일의 오후에는 간혹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들고 이곳 벤치를 찾는다.

오동나무 고목은 거무스름하고 윤기가 없는 노인의 피부처럼 단단한 껍질과 더이상 자라거나 가지를 칠 수 없는 비대한 덩치를 가졌지만, 땅 속 깊은 뿌리의 생명력으로 여름이 오면 유난히 푸르고 넓은 잎사귀들로 단장하고 몇 안되지만 새댁의 첫 아기같은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어린 나무들의 숲 한 가운데 자리한 이 노목(老木)이, 이곳을 찾는 나에게 알 수 없는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주는 것은 이미 중년에 깊이 들어선 나이 때문인 듯하다.

나이가 들고 있다는 것은 기능성과 합리성이 보편화되고 도덕적인 가치와 연륜보다는 경제적인능력이 우선시되는 요즈음의 사회에서, 부모와 스승의 자격을 논하는 아이들과 이를 편드는 모질게도 똑똑한 어른들을 보는 것만큼이나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앉은 자리만으로도 위엄을 지닌 오동나무 노목의 완고한 예스러움과 젊은 나무들 속에서 스스로를 받치고 있는 신선한 생명력을 보면서 이 조그만 야산의 언덕에서 내가 어린아이처럼 노년에대한 아름다운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강남 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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