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처 능력이 전술적(戰術的)인 면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문화에서도 이 점은 반드시필요하다.
거대담론이 사라진 이후 문학이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숙고하고 고민했다. 이념의빈 자리를 연애감정으로 호도한 시들이 쓰여지면서 그런 시들이 가끔은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기도 하다.
좌초되지 않는 감정은 중요하지만 승화되지 않은 장식적 언어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독자들을우롱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런가 하면 시대의 흐름에 관계없이 명상적 언어로 마음의 안주처를 찾고 지고(至高)한 정신의영역을 노래하는 시들이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보다 높은 시의 세계를 지향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단이라 할 만하다. 송재학의 '산'(세계의 문학, 겨울호). 이동백의 '흔적'(현대시, 1월호)등이 그런 예이다.
〈사내의 마지막 옷을 벗겨, 동안거의 묵언 위로 얇고 검은 빌로드천의 바람을 덮어주면 밤새 눈내려 높은 곳은 구름의 무구(無垢)를 껴안고 낮은 곳은 까마득하게 추락하는 흑백의 추월산-송재학의 '산'〉
〈눈 그치니 강물 다시 흐르네/둑을 따라 걷는 까닭은 개운한 하늘/돌아보니 선명한 발자국/새들도 남기고 싶었을까/돌아갈 곳은 둥지라는 듯/하얀 수틀 위에 찍어낸 수실-이동백의 '흔적'〉언어의 마을이란 무변(無邊)한 것이어서 찾아가면 찾아갈수록 깊고 유현한 것이다. 연약하면서 강하고 무색이면서 다채색을 향유하는 것이 언어의 세계이다.
송재학의 최근의 작업들은 현실에서 소재를 빌려오되 생경한 현실이 아니라 메타모르퍼즈(metamorphose·변용)한 현실, 현상을 바라보되 현상을 넘어 이상의 세계에 닿고자 하는 염원이나타나 있다.
위의 시의 '높은 곳은 구름의 무구를 껴안고 낮은 곳은 까마득하게 추락하는'산의 자태를 평이하지 않은 초월적 감성으로 노래한 것이 그 예이다. 이동백 역시 매우 정교한 언어와 섬세한 감각으로 사물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그런만큼 그는 스스로가 짊어지기 어려운 난제를 택하기보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우리가 잊고 있는 사상들을 조용한 목소리로 노래해 우리들의 무감각을 일깨우고 자성시킨다. 위의시의 마지막 구절, '내심으론 창공을 꿈꾸면서/강 건너편 집 한 채/졸리는 눈 뜨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새를 노래하면서도 시인이 노래하고자 하는 것은 새가 아니라 바로 시인자신의 마음임을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은유는 현대시의 재산이지만 자칫 전달에 허약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점을 함께 생각 玖 좋을 듯하다.
이기철 〈시인·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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