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관료들의 현장감각

희랍신화중에 '프로크라스티스의 침대'라는 것이 있다.

힘이 장사인 프로크라스티스(Procrustes)란 이 강도는 숲속에 숨어있다가 여행객을 유혹한다. "누가 누워도 꼭맞는 푹신한 침대가 있으니 쉬어 가십시오…" 이렇게 꼬임에 빠진 여행객을 쇠침대에 눕혀놓고 침대보다 키가 더 크면 다리를 싹둑 잘라 버리고, 거꾸로 침대보다 작으면 목을 잡아 늘여 침대에 맞추는 식으로 사람을 해쳤다는 거다. 일종의 규격화.

■변함없는 경직된 사고

공직사회의 몇가지 병폐를 얘기할때 우리는 부패, 불친절, 규격화 등을 든다. 상탁(上濁)을 핑계한하부정(下不淨), '군.관.민'이 민.관.군(民.官.軍)으로 바뀐지 수십년이지만 지금도 외쳐대야 하는 '친절 봉사', 사업좀 해보겠다고 허가하나 내는데 수년씩 걸리는 행정의 규격화는 하부.중간 공무원들의 프로크라스티스적인 경직된 사고(思考)와 행동의 부산물이었다.

생각이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라면 공무원들이 바꿔야할 해묵은 숙제는 하나 더 있다. 신문제목에수십년째 뽑혀나오는 '탁상행정'의 네글자다.

지난달 10일쯤 오후, 일행 몇이서 대구 앞산공원쪽으로 산행을 했다. 문제는 관리사무소의 스피커에서 터졌다. "…시민여러분 자연을 보호합시다, 인화물질을 갖고가지 맙시다, 여러분이 수십년가꾼 나무이므로 꺾지 말고, 버리지 말고… 말고…"

확성기로 쩌렁쩌렁 울리는 아가씨의 육성 녹화방송이 하다못해 10분간격이었다면 좀 좋았을까.꺼졌다 싶으면 또 나오고, 이제 살았다 싶으면 또 고함을 질러대니 모처럼 쉬러온 사람마다 몸서리를 쳤다. 자연보호가 소음공해를 유발한 것이다.

거기다 한술 더떠서, 방송끝에 정수라의 '아아! 우-리- 대한민국'은 왜 따라나오며 '사나이로 태어나서…'하는 군가는 또 왜 터져 나오는지…. 산중턱까지 오르다 못견딘 일행이 관리사무소측에SOS를 쳤더니 그제서야 "죄송합니다. 곧 연락해서 시정하겠습니다"하는 답변이 왔다.

■금메달감 탁상행정

산불비상에 '테이프'틀기 - 하찮게 치부해버려도 될 이 공식화된 작은 행정 하나가 현장에 어떤결과로 나타나는지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관료들의 탁상행정이 국민들에게 경제적 피해를 끼칠땐 그것은 더 큰 원성으로 확산된다.지난해 태풍'예니'로 인한 수해실태조사는 탁상행정의 금메달감.

워낙 피해가 많다보니 현지실사에 엄두가 나지 않은 일부 읍면사무소에서 경지면적 비율로 피해를 산출해버린 것이다. 개똥이네는 1만평중에 20% 피해가 났다니까 철수네는 5천평중 1천평, 슈퍼집은 100평뿐이니까 20평피해….

탁상행정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최근 또하나 있었다. 소위 새한.일어업협정 발효에 따른 어장의 심각한 축소문제.

한반도와 일본사이의 바다 즉, 동해와 남해를 바둑판처럼 쪼개놓은 해구도(海區圖)가 있는데 그게99년 1월 해양수산부가 만든 한.일어업협정 수역도. 동해와 남해엔 가로세로 스물댓개씩의 줄이그어져있고 여기서 생긴 이 바둑판 눈금같은 해구(가로8.세로10마일)가 350여개.

■만선인가 했더니 빈배

그러나 이 눈금같은 해구 모두에서 물고기가 잡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몇월에 어떤 해구에 어떤회유성어종이 몰리는지 정확한 지식이 없다면 어찌되나? 어부는 고기를 잡을수 없고 어업협상에나선 해양수산부관리들은 책상에 앉아 줄을 잘못 그을 수밖에 없으니 노다지해구(황금어장)를 상대측에 뺏길 수밖에 없다. 우리의 해양부 실무자들이 이 바다눈금을 꿰뚫고 있었다고 믿고 싶지만 결과는 어민들의 아우성.

"바둑싸움에서 우리쪽도 집(눈금)을 차지하긴 했는데 계가(計家)해 보니 그게 모두 공배(빈집)였어요"

행정의 전문성, 현장감각이 있고 없고에 따라 작게는 주민의 행복, 크게는 국가적 이익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경북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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