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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토피아-4대가 한지붕 탁연빈 교수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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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의 인간관계가 부부간에 싫고 좋음이 금방 드러나는 분명함을 장점으로 한다면 여러 대(代)가 모여사는 확대가족은 싫어도 싫은 내색을 하기 어렵고 좋아도 마냥 좋다고 표현할 수 없는 억압성 내지 은근함이 특징이다.

한때 결혼 당사자들에게 "부모와 함께 사느냐, 떨어져사느냐"가 큰 관심사가 된 적이 있을 정도로대가족 내지 확대가족은 산업사회에서 결혼기피 제1호 사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시 수성구 범어2동에 사는 탁연빈(61·경북대교수)씨댁은 4대(代)가 모여 살면서도 '째그락'거리는 소리가 담밖으로 흘러나온 적이 없다.

결코 개방적이지 않고 오히려 고루하다고 할 정도로 보수적인 탁교수댁이 요즘 세상에 보기드물게 화목함을 유지하는 것은 대가족 특유의 인간관계, 즉 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나'보다 '가족'을 앞세운 덕분이다.

"출세보다는 조상에 대한 봉양, 나보다는 자식에 대한 비중을 두어 왔어요. 우리는 선조와 후손을이어주는 가교 아닌가요. 그런게 인생이죠"

광산 탁씨 12대 종손으로 아직까지 4대 봉제사를 모시는 탁교수댁의 가훈은 뜻밖에도 낙천적인 '소락재인화'(所樂在人和).

즐거움이 있는 곳에 사람간의 화목함이 있음을 강조한 탁씨는 어머니(이순이·90)에게서 배운대로 '공부는 좀 못해도 사람이 돼라'고 가르쳤다. 유교풍으로 사람 사는 도리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지만 '효'를 강요하기 전에 먼저 모범을 보인다.

최근 탁교수는 '셔터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침 방학이라 얼마전 개업한 며느리 원준희(33·대구시 수성구 중동 원내과 원장)씨의 병원문을 시아버지 손으로 닫아주면서 얻은 별명이다."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합니까. 사실 내 아들보다 며느리가 더 소중하거든요. 주부가 든든해야 가정이 흔들리지 않을 거구요"

셔터맨을 자청한 시아버지의 발걸음에는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는 은근한 애정이 숨어있다. 탁교수의 아내 박윤자(52·대구시여성회관장)씨는 요단강을 건너기전에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고부갈등론에도 불구하고 며느리 원씨의 도시락을 매일 싸준다.

"맏종부로써 직장생활을 고집하는 저를 싫어하는 내색없이 거두어주신 시어머님처럼 저도 며느리도시락을 즐겁게 쌉니다"

박씨는 몇년전 사무관으로 승진하고 집에 와서 시어머니께 진심으로 큰절을 올렸다. 어머님이 주춧돌처럼 굳건하게 버텨 서서 집안일을 맡아주지 않았다면 직장일이나 종부역할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으리라는 감사함의 표현이었다.

"시어머님이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는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항상 감추려 하시지만 아들 손자는 물론 증손자까지 돌봐주시는자상함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님을 닮기를 소망하지만 제가 그 꿈을 이루기에는 헌신적인 가족사랑이 너무 부족합니다"지난 6일 2층 단칸방에서 4식구가 비좁게 살던 아들(탁원영·경북대병원 내과·33) 가족을 분가시킨 박씨는 시어머니 걱정으로 마음이 무겁다.

"애 둘을 데리고 한방에 사는게 딱해서 딴살림을 내줬지만 증손자(권용·7) 증손녀(주현·4)를 다거두어 주시던 어머님이 많이 섭섭해하셔서…"

손자가족이 이사가기 전날, 섭섭하고 무거운 마음에 동네 경로당에도 놀러나가지 않던 시어머님을 바라보는 박씨의 얼굴에 부대끼며 키워온 가족사랑이 오롯이 피어난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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