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영화 어제와 오늘-(18)동시녹음

'입 따로, 대사 따로…'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영화 관객들은 스크린에 비친 출연 배우의 입모양과 대사가 맞지 않아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남녀 주연배우의 가슴아픈 이별의 순간 등 클라이맥스에서 배우의 입놀림과 동떨어진 성우의 목소리는 감동을 반감시키곤 했다.

70년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무려 231편. 양적으로 많은 영화들이 쏟아져나왔으나 질적으로 수준 이하의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그 가장 큰 이유가 영화촬영현장에서 출연배우가 바로 대사를 녹음하는 동시녹음 제작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촬영뒤에 대사 녹음을 따로 하는 후시(後時)녹음이란 제작방식으로 인해 배우들은 어려움없이 카메라 앞에서 입모양만 벙긋 흉내내면 됐다. 자연히 인기배우들의 경우 5, 6편 겹치기 출연이 예사였고 극의 사실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주연급 배우들의 목소리만 단골로 맡은 성우들의 겹치기 녹음도 흔했다. 당시 인기를 누린 박영민, 이창환, 정은숙, 천선녀 등이 그 주인공들.

영화감독들은 후시녹음을 해놓고 배우의 입과 대사가 맞나 안 맞나 가슴을 졸이면서도 동시녹음을 하지 못했다. 후시녹음보다 평균 2, 3배가 더드는 제작비를 선뜻 내겠다고 나서는 제작자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1927년 미국에서 만든 '재즈 싱어'가 토키시대를 열고 바로 동시녹음으로 들어간 외국의 경우와 달리 낙후된 우리 영화는 국제영화제에 나가 번번이 창피를 당하곤 했다. 동시녹음이 아닌 영화에서는 생명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해방전 일본인 기술진에 의해 동시녹음이 이뤄졌고 해방후 김기영, 신상옥 감독 등이 동시녹음을 시도하기는 했으나 미국공보원의 지원을 받거나 부분 녹음에 그쳤다.

뒤늦게나마 순수 국산 장비와 기술진으로 전편 완전 동시녹음을 이뤄낸 영화가 바로 정진우 감독의 '심봤다'. 1979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감독, 녹음, 여우주연, 남우조연상 등을 휩쓸며 우리영화 60년 사상 처음으로 전편 동시녹음시대를 연 작품이다.

이대근, 유지인, 황해 등이 호연한 이 영화는 오대산의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산삼을 캐는 심마니의 끝없는 물욕과 이로 인한 인간상실의 비극을 토속적 리얼리즘에 담아 주목을 끌었다.

〈金英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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