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윷놀이

엊그제 반상회에 참석했다가 윷놀이를 하게 되었다. 사십대와 오십대의 나이 차이로 편을 가르게 되었는데, 사십대인 1502호 댁이 멋들어지게 윷가락을 날리자 연거푸 모가 나왔고, 따라서 사십대 편은 신이 나서 박수를 쳐 댔다. 모판의 찌걸에서 말이 임신(한 동 업고 가는 것)을 하거나 임신한 말이 날걸의 '퐁당'에 빠져 버릴 때도 양쪽편은 번갈아 가며 응원을 했다.

어느 편이 이기던지, 누가 윷가락을 잘 던지고 벌윷을 놀던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지만, 모두들 한 마음이 되어 응원을 보냈다. 입주한지가 몇 달 되지 않은 아파트인지라 서로 서먹서먹해 하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는 순간이었다.

윷놀이는 우리 고유의 놀이다. 설이 되어 친척들이 모이거나 이웃들이 모이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놀이가 윷놀이다. 시누이와 올케가 한편이 될 수도 있고 아버지와 아들이 적이 될 수도 있다. 던져진 윷가락이 엎어지기도 하고 젖혀지기도 하면서 승부를 다투는 윷판이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시기나 질투가 없으며, 오직 끈적끈적한 정이 녹아 있을 따름이다.

문화를 같이하는 한 겨레가 다함께 가슴을 열고 거기에 따른 행사와 의식을 갖춘다는 것은, 그 겨레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화합시키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내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저녁에라도 웃어른을 중심으로 하여 친척이나 이웃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모여서, 오곡밥을 나누어 먹으며 윷판이라도 한 판 벌여 보자. 어려운 세상살이지만 그런 여유라도 한번가져 본다면 더할 수 없이 풍요로운 대보름날이 되지 않겠는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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