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美 개혁교육의 현장-동부 뉴헤이번시를 가다

아이들이 교실 오른쪽 붉은 카펫이 깔린 바닥에 원을 그리며 둘러 앉았다.

캐더린 웨어교사는 색종이 꽃으로 장식한 조그마한 플라스틱통을 중간에 놓으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저 애 신발이 맘에 들어요" "저는 음… 옷이요. 옷이 좋아요"

웨어교사는 아이들이 돌아가며 통에서 쪽지를 하나씩 꺼내게 했다. 통에는 학생들 이름이 적힌쪽지가 들어있다. 남학생 이름은 분홍색, 여학생 이름은 초록색 쪽지에 적혀 있는데 남학생은 초록색, 여학생은 분홍색 쪽지를 꺼내게 한다.

쪽지를 꺼낸 아이는 그 쪽지에 적힌 아이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혹은 그 아이의 어떤 점이 칭찬할 만 한지를 얘기하는 시간인 것이다.

쪽지를 꺼내는 아이는 이름이 적힌 아이를 똑바로, 혹은 슬쩍슬쩍 쳐다보며 고민한다. 무엇이 맘에 들까 하고 궁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상이 된 아이는 잔뜩 기대하는 눈치다. 특히 여자애들은 남자애가 머리모양이나 옷, 신발 등이좋다고 말하면 거의 틀림없이 그 머리나 옷,신발을 다시 한번 만져봤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친구들에게 비친 자신의 긍정적인 부분을 새삼 깨닫게 되고 이를 자신감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또 친구들의 좋은 점을 찾아내면서 남의 장점을 보는 법도 배우게 된다.이 유치원이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에도 같은 맥락이 흐르고 있다.

웨어교사와 보조 등 2명의 교사는 학생 19명과 일일이 악수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이때 교사와 학생들은 노래도 부른다. 이날 부른 노래는 '오늘 나는 행복해'라는 곡이었다.이 학교는 이처럼 칭찬하기와 자신감, 행복을 강조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흑인 밀집지역에 자리한 이 학교는 학생 대부분이 흑인이다. 생활수준이나 부모들 교육정도가 미국사회 평균보다 아무래도 낮은 편이어서 지식교육보다는 폭력예방같은 감성교육에 역점을 두고있다.

이같은 감성중시 교육법은 새롭고도 적절한 것으로 평가받았고 뉴헤이번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그 결과 뉴헤이번의 십대들은 자신이 다른 지역 청소년들보다 덜 폭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총기에 관심을 적게 갖는 것으로 조사됐다. 첫 성경험 시기가 늦춰졌다는 보고까지 발표됐다.유치원 벽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나는 소중해' '나는 사랑스럽고 능력있어' '그래, 나는할 수 있어' '더 열심히' 같은 표어였다.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것도 많다.

'나는 나의 이런 점을 좋아해' 코너를 보자. 애들은 이 제목아래 자기 장점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 적고 그림으로도 그려본다.

이런 것들을 벽에 잔뜩 붙여 놓았는데 사실 별 내용은 없었다. "엄마가 집 청소하는 것을 도운내가 자랑스러워" "동생과 자전거 타며 같이 놀아주었어. 내가 잘한 일이지"하는 식이다.그러나 이같은 자신감 북돋우기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고 웨어교사는 말했다.

"우리는 수학이나 과학같은 과목도 중요하지만 이같은 감성중시 과정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더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웨어교사의 강조.

이날 3학년교실에서 이뤄진 수업역시 감정에 관한 것.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교사는 칠판에 빈 종이를 붙여놓고 아이들의 얘기를 적는다. 아이들이 내놓은 '화 다스리기' 대처법에는 책을 본다,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잔다,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린다, 자전거를 탄다, 나가서 논다, 산보를 한다, 운동을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생각해본다, 그네를 탄다 등 다양한 것들이 나왔다.

15명의 학생들이 손을 들어 하나씩 얘기한 뒤 교사는 각각의 방법중 효율적인 것과 그렇지 못한것을 비교해가며 평가해 주었다.

교실 벽에는 '감정 신호등'이란 게시물이 붙어 있었다.

화가 났을 때 대처하는 3단계 방안이다.

빨강 등은 화를 폭발시키지 말고 진정하라, 노랑 등은 걷는다든지 하며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하라,녹색 등은 왜 화가 났는지 반성해보라 등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실제 화가 났을 때 이 감정신호등을 떠올리도록 반복 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같은 감성교육을 총칭해 이 학교에선 찰리(CHARLIE)교육법이라고 불렀다.

(CHemical Abuse Resolution Lies In Education), 즉 교육으로써 감정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방법론의 앞 철자를 딴 찰리교육법은 1976년 미니애폴리스에서 처음 시도됐다.분노뿐만 아니라 실망, 슬픔, 증오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대처하고 이를 다스리는 방법을 교실에서찾아내 천성처럼 몸에 익히자는 학습법이다.

게시판에는 또 학생 각각의 이름옆에 신중함, 친절함, 사려깊음, 활동적임같은 긍정적인 단어가적힌 것도 있다. 누구는 신중하고, 누구는 친절하고 하는 식이다.

잘하는 야외활동도 같이 적혀있다. 누구는 달리기를 잘하고, 누구는 자전거 타기에 능하고, 누구는 점프하기에 뛰어나고….

"학생들은 이를 보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품성을 그같은 긍정적인 면모로 만들어가게 됩니다. 또잘 하는 야외활동은 더욱 잘 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다른 야외활동도 잘 한다는 얘기를 듣기위해힘쓰게 되지요" 웨어교사는 이같은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힘줘 말했다.

〈李相勳기자〉

■타임지 대서특필-EQ개발 성공학교

비처초등학교를 찾은 그 날은 마침 뉴헤이번 뉴스전문TV인 '채널 8'에서도 여기자 한 명과 카메라기자가 취재차 나와 있었다.

그들은 오전 내내 유치원과 초등학교 각 교실을 돌며 열성적인 취재활동을 벌였다. 이 학교는 공립으로 유치부 및 1~5학년 과정이 개설돼 있다.

"편집이 끝나는대로 저녁 뉴스시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몇 차례에 걸쳐 방영할 계획"이라고 여기자는 말했다.

이들과 마주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학교측이 일정을 조정했기 때문이다.

취재협조를 위해 전화했더니 "올려면 그날 와서 다 함께 취재하십시오"라고 학교측은 원했다. 취재오는 것을 다소 성가시게 여길 정도로 이 학교에는 뉴헤이번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견학 혹은 취재차 오는 이들이 많다.

베치 모클리교장은 "특별히 우리 학교가 유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감수성을 키우는각종 프로그램을 의욕적으로 시행하고 있지요. '나는 할 수 있다'는 정신을 강조하는 교육철학과,기술보다 마음을 중시하는 교수자세를 학부모와 지역사회로 부터 평가받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학교가 유명해진 데에는 물론 시사주간지 타임(TIME)의 공이 크다.

타임은 97년 9월29일자 교육난에 "남을 칭찬하고 친절히 대하자는 교육법으로 아이들의 감성지수(EQ)를 키우는데 성공한 학교"라고 크게 소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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