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석조(石造)·석각(石刻) 예술의 진수로 손꼽히는 경주 석굴암. 95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다. 통일신라시대 국운이 최고조에 달했던 경덕왕 15년(751년)에 김대성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석불사는 조선 후기 석굴암이란 이름을 얻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오묘한 진리를 간직하고 있는 석굴암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다시 석불사의 이름으로 되돌아가봐야 한다. 석굴암이라 하면 바위를 인공적으로 파서 만든 동굴사원처럼 이해되기 쉽다. 하지만 창건 당시의 이름인 석불사로 부르게 되면 번듯한 사원에 부처님을 모신 석실금당(石室金堂)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지상에 돌을 쌓아 축조한 석조건축물인 석불사 석실금당은 목조건축물의 본을 떠서 완성시킨 여느 석조물들과 달리 독창적인 건축과 완벽하고 빼어난 조각으로 전세계에 이름이 높다. 동진(東進)하는 불교의 길을 따라 갈고 닦은 성상(聖像) 제작기법과 성소(聖所) 건축기술이 석불사에서 찬란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예로부터 동대(東臺)로 불리는 곳. 해발 700m, 멀리 동해가 바라보이는 토함산 7부 능선 위 외진 곳에 자리한 석불사는 불국토(佛國土)를 꿈꾼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신앙의 공간이다. 동시에 인간의 심성을 울리게 하는 보편적인 미학을 담고 있다. 최고의 불교 건축물인 석불사가 위대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석불사는 그리 크지 않은 단 하나의 내부공간만 갖고 있을 뿐이다. 전방후원(前方後圓)형 구조로 전실(前室)과 통로를 거쳐 원형 주실(主室)의 크기는 지름 7m, 높이 8m밖에 되지 않는다.
방형 공간인 전실 벽면에 있는 8구의 팔부중상(八部衆像)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무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치마를 입은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 역시 불법을 수호하는 한쌍의 수문장으로 용맹스럽다. 주실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 좌우에는 동서남북 사방을 다스리는 수호신으로 두 발로 악귀를 밟아 항복시키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서있다.
천계를 상징하는 둥근 공간에 이르면 한가운데 인위적인 기교없이 부드러운 생명력이 넘치는 석가모니대불이 앉아있다. 높이 350㎝의 당당하고 원만한 모습의 본존불은 깊은 명상에 잠긴 듯 가늘게 뜬 눈과 엷은 미소를 띤 붉은 입술, 풍만한 얼굴로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쪽 검지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모양은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에 이른 정각(正覺)의 의미를 강조한다. 숭고한 본존불의 항마촉지인상은 석불사를 기점으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예불의 주대상이 될만큼 우리 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범천상(梵天像)과 제석천상(帝釋天像), 보현(普賢)과 문수(文殊) 보살상, 그리고 10대제자상이 대칭을 이루도록 조각돼있다. 입구에서는 11면관음보살상이 석가모니불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둥근 주실 뒷벽 가운데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는 11면관음보살상의 아름다운 자태는 석가모니의 자비심을 느끼게 한다.
더이상 군더더기가 필요없는 공간. 전체와 부분, 부분 상호간의 균형과 조화, 통일감을 느낄 수 있는 석불사의 미학의 뿌리는 바로 비례의 원리에 있다고 강우방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강조한다. 이 비례의 원리는 불교 고유의 인과설과 연기사상(緣起思想)과 일치한다. 불교사상의 핵심인 연기설은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서로의 존립에 필수적 조건이 된다는 '인연생기(因緣生起)'를 뜻한다. 이 연기설이 발달, 화엄종의 극치를 이루며 '법계연기(法界緣起)'라는 근본 교리를 완성한다.
석불사의 함축미는 주실의 원형구조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바닥, 천장, 주실 중앙의 본존불 대좌, 본존불과 주벽 사이의 공간, 이 모든 것이 원형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하며 모든 존재를 생성 변화시키는 불변의 축. 원은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질서를 어기지 않고 밝고 공정하며 무사(無私)한 하나의 이치, 우주의 원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석불사는 서양의 종교 건축물과 달리 결코 거창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자동차같은 교통수단이 없다면 불국사에서도 산길을 따라 8km나 걸어올라가야하는 은밀한 곳에 서있다. 모든 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건축물이 아닌 것이다. 오로지 석불사가 지향하는 세계에 공감하고 그것을 소망하는 사람들만이 높고 외딴 길을 걸어올라 스스로 느끼고 깨닫도록 만들었다.
매일 아침 동해의 물살을 가르고 떠오르는 생명의 태양을 받아들이는 석불사는 현란한 몸짓이 아닌 '염화시중의 미소'로 부처님이 계시는 햇빛 가득 찬 이상향의 세계을 향해 중생을 인도하고 있다.
〈글 金英修·사진 朴淳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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