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례 산동면 일대 산수유마을 손짓

남녘은 지금 겨울의 문턱을 넘어서 봄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제주에서 시작한 꽃소식이 잠시 북상을 멈추는 지리산. 그 넓은 품에서 산수유가 꽃망울을 틔우고 고로쇠는 물을 토해 내며 겨울의 찌꺼기를 털어낸다.

층층나무과의 낙엽교목인 산수유는 봄소식을 전하는 첨병.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채 녹기도 전인 2월말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다. 설중매라 불리는 매화보다 일찍 핀 산수유 꽃은 4월초까지 은은한 향기를 전한다. 10월쯤 열리는 붉은 열매가 해혈치료제 자양강장제 등으로 많이 사용되는 산수유는 땅에 물기가 많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큰 곳에서 잘 자란다.

대표적인 산수유 마을은 전남 구례군 산동면 일대. 면내 48개 마을에서 전국 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산수유를 생산해 낸다. 산동이라는 이름도 산수유에서 유래했다. 중국의 산수유 주산지인 산동성의 한 처녀가 옛날 이곳으로 시집오면서 산수유를 가져와 심었다는 전설. 산수유가 필 무렵 이곳 사람들은 봄이 왔음을 알고 겨우내 얼었던 땅을 갈고 씨를 뿌린다.

대구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따라 밤재를 넘으면 구례군 산동면이다. 지리산 만복대와 노고단을 동편 울타리로 삼고 있는 곳으로, 조선 중기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가장 살기 좋은 땅으로 꼽았다. 길섶이나 동네 어귀, 냇가, 산비탈에 핀 산수유가 노란 물감을 쏟아 부은듯 세상을 물들이고 있는 꽃동네다.

구례군 산동면을 제대로 보려면 원촌리에서 산길을 따라 가장 윗마을인 위안리 상위마을까지 올라 가야 한다. 지리산 온천에서 10리정도 올라가면 상위마을에 닿는다. 한때는 100여집이 넘게 사는 큰 마을이었으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30여집만이 남아 있다. 상위마을에 올라서면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 꽃더미가 발아래 지천으로 펼쳐진다.

해마다 경칩 무렵이면 상위마을에서는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느라 분주하다. 고로쇠물은 신경통과 위장병, 당뇨등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는 신비의 약수. 2월말부터 3월말까지가 고로쇠 시즌이지만 물맛은 경칩 전후에 받은 것이 가장 좋다.

뼈에 이롭다는 뜻에서 골리수(骨利水)라고도 불리는 고로쇠물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신라 화랑들이 물대신 수액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한말에 오만원정도 하는 고로쇠물은 끝물이 나오는 시기에는 삼만원까지 가격이 떨어진다. 물을 살때는 밑바닥까지 투명한 것을 골라야 쉽게 변하지 않는다.

고로쇠물은 1주일정도 보관이 가능하지만 춘분이 지나면 2~3일만에도 상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순사건때 백부전이라는 19세 처녀가 국군에 끌려가며 불렀다는 산동애가의 애잔한 가락이 남아 있는 상위마을을 나와 내산, 원달, 수기마을을 지나면 수락폭포가 나온다.

지리산 만폭대와 다름재에서 내려오는 물이 산수유 숲을 헤집고 10여m 높이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물맞이가 신경통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한여름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李庚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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