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4년 한반도 전쟁 일촉즉발

94년 6월16일 나는 존 섈리캐슈빌리 합참의장과 게리 럭 주한미군 사령관과 함께 백악관 각료회의실에서 클린턴 대통령을 기다렸다. 4개월전 국방장관직을 맡은 이후 최대 현안으로 부각된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대처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북한은 냉전시대 종식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를 거부하면서 핵무기개발계획을 추진해 왔다. 93년 가을까지 북한의 영변 원자로는 거의 완성됐으며 연료봉의 재처리가 수개월 만에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국방장관 취임당시 상황은 매우 긴박했다. 북한은 IAEA 사찰팀의 출국을 요구했고 핵폭탄 제조를 위한 플루토늄 재처리를 강행하겠다고 위협했다.

국방부 참모들은 북한이 원자로를 가동하면 수개월내에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면서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제거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섈리캐슈빌리 의장과 럭 사령관에게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방어계획인 '5027 작전계획'을 수정, 군사공격으로 핵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비상작전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이러한 핵시설 공격계획은 불과 며칠간의 비상작전으로 미군 사상자를 최대한 줄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북한측 사상자와 방사능 유출위험도 최대한 줄이도록 돼있었다.

유엔을 통한 대북압력이 효력을 거두지 못하자 6월14일 소집된 미군 최고지위관회의에서 럭 사령관은 새로운 군사적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회의결과 이러한 계획은 일부 수정돼 이라크의 도발 가능성을 감안, 한반도와 중동 등 두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비상계획이 수립됐다.

클린턴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보위에서 북한의 공격을 패퇴시킬 수 있는 3가지 군사대응방안을 보고했다.

최종적 선택이 이뤄지기 직전 평양을 방문중이던 지미 카터 전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일성의 초청으로 이뤄진 카터 전대통령의 방북은 비공식적이었지만 앤터니 레이크 안보담당보좌관이 협조하고 있었다.

김일성이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제안함에 따라 클린턴 대통령은 레이크 안보보좌관에게 미국정부의 입장을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 전쟁직전의 상황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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