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를 향해-거품교육 개혁

미래를 정확히 전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 도래할 새 천년은 지난 천년과는 다르게 사회변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예측불허의 변화', '무원칙의 변화', '혁명적인 변화', '폭발적인 변화'가 될 것이다.

그야말로 대변혁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코 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킬 것이 틀림없다.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퇴보할 수밖에 없고 종국에는 몰락하게 된다.

다른 한편 인류사회 전체로 볼 때, 지구상의 모든 지점이 한 마을처럼 지근 거리에 있게되는 지구촌 시대가 빠르게 전개되고, 지구적 상호의존성이 더욱 증대되어, 그야말로 인류의 문제가 특정지역의 문제로 머물지 않고 전세계적인 문제로 확산되는 현상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과 교통, 그리고 정보통신의 보다 빠른 발달로 외부문화와의 접촉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어 가치관의 변질이 급속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미 도래한 정보사회는 정보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게 되어 정보의 유통체계가 고도로 발달된 정보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사회를 고도 지식정보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미래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지금 우리가 어떤 교육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교육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미래는 우리 인간의 질과 능력이 좌우하게 될 것이고, 인간의 질과 능력은 교육이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우리는 불과 30여년의 짧은 기간 내에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를 맞게되었다. 서구 사회에서는 150여년에 걸쳐 이룩한 것이다. 우리는 고도 경제성장을 조기에 이룩했다고 자랑해 왔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급격한 사회변동과정에서 산업사회의 온갖 모순과 폐해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하여 인간성이 상실되고, 공동체 의식이 퇴락하고,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비극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고도 경제성장의 시대에도 입으로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경제 투자 우선 때문에 교육투자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역대 권위주의 정권은 교육자의 자율적 교육 개선 의욕을 극도로 위축시켜 양적으로는 가히 세계적이지만 질적으로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교육은 저질 상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양산한 대량생산 공장체제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저질 인간을 많이 배출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 한국교육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개혁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치인식의 위기, 세계관의 위기, 그리고 이에 따른 도덕적 위기를 앞서 극복하지 않고서는 한국교육위기의 극복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작년(1998년)에 21세기를 위한 유네스코 국제위원회에서는 미래사회 교육의 네 기둥에 대해 제안한 바 있다. 교육의 네 기둥이란 '존재를 아는 교육', '더불어 사는 교육', '행동하는 교육', '알기 위한 교육'을 말한다. 이것은 '자기 존재도 모르는 교육', '저 혼자만 잘 살려는 교육', '실천과는 동떨어진 교육', '알아야 할 것을 등한시하는 교육'과는 결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라는 저서를 낸 피터 드러커도 앞으로 교육이 지향해야 할 교육적 인간상이란 곧 교육받은 사람을 의미하며 교육받은 사람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현실에 적용할 줄 알고 문화를 충분히 풍요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의 소유자"를 말한다고 했다.

창조적 능력의 소유자가 주도해 갈 미래사회는 지성 못지않게 인성을, 분석력 못지않게 이해력을, 인간 못지않게 자연을, 나 못지않게 남을 중요시하는 시대정신이 더욱 요구될 것이다. 나아가 자율과 창의, 분권화와 다원화, 개방과 교류, 협력과 조화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추가될 것이다.

우리 교육이 이러한 시대정신을 구체적으로 반영하여 보다 질 높은 교육으로 새 천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가지 질문에 자신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은 첫째, 인간의 존엄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는가? 둘째, 창의적이면서도 품격이 있는 인간을 형성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셋째, 현실을 망각한 교육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을 반영한 교육을 하고 있는가?

넷째, 공교육의 원리인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루고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다섯째, 진정한 민주 시민을 육성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여섯째, 통일을 지향하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일곱째, 경쟁은 필요하지만 무한경쟁은 곧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교육을 하고 있는가?

경제에만 거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교육에도 거품이 있다. 보이기 위한 교육, 전시행정과 같은 알맹이는 없고 겉만 요란한 교육이 바로 거품 교육이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온갖 구호와 함께 겉만 요란할뿐 실제 가치있는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민주적이지 못한 교육행정 풍토는 여전하고 인성교육을 강조한다고 문서로만 꾸며 놓고 실제로는 입시교육에 매달리고 있는 단편적 지식위주의 교육, 교사의 자율성과 재량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는 구조적 틀을 그대로 둔채 교직의 전문성과 자율성 운운하고, 열린 교육한다면서 또 다른 열린 교육 획일화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 우리 교육현장의 실상의 한 단면들이다.

21세기 개방화, 정보화, 지구촌화로의 인류문명사적 대변혁기를 맞아 국제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질 높은 교육뿐이다. 부존자원도 보잘 것 없고 분단국가인 우리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양질의 인적 자원 생산뿐이다.

이처럼 중요한 교육이 거품 속에서 겉도는 현실을 그냥 둔다면 새 천년은 고사하고 21세기 안에 우리는 삼류국가로 전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새 천년에 대비하기 위해서 교육의 거품부터 먼저 걷어내야 한다.(송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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