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농가부채 위험수위

▣안동·상주

안동시 서후면 돼지농장에는 십수억원을 들여 만든 첨단 시설로 지난 해 여름까지만 해도 6천~7천여마리 돼지가 사육되고 있었으나 지금은 단 한마리 없이 텅 비어있다.

농장대표 장모(47)씨는 무리하게 사육규모를 확장, 경영자금 압박을 받던중 97년 말 IMF사태로 사료값이 폭등, 1년만에 파산하고 말았다. 사료회사에서는 외상값 회수를 위해 사육 중인 돼지를 모두 처분해버렸다.

마을에는 장씨에게 사업자금 대출 보증을 섰던 피해자들이 속출, 1인당 채무보증 금액이 수천만원에 이르게 됐다.

도산직후 잠적했던 장씨가 최근 마을로 돌어와 돼지를 다시 길러 빚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장씨의 재기를 믿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실정이다.

보증인 김모(46)씨는 "이웃을 믿고 보증을 섰다 전재산을 날리게 됐다"며 "영농자금 대출회수를 보증인 책임으로만 돌리는 제도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농촌 공공기관 등 공직사회 역시 연대보증 파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기는 마찬가지. 금융기관에서 신용 우수 군으로 분류, 공직자들의 보증만 있으면 대출이 손쉬워 농사를 짓는 친척, 친지에게 보증을 서 상당수가 고스란히 빚을 떠안았다.

안동시청 박모(48)씨는 영농회사를 설립하는 선배의 대출보증을 섰다가 5천만원을 대신 갚아야할 처지에 놓였다. 박씨는 현재 월급의 50%를 압류당하고 있다.

신혼인 모 면직원(30) 역시 친척의 영농자금 대출보증을 섰다 낭패를 본 경우. 월급을 차압당하지 않기 위해 전세금으로 원금을 갚고 월셋방으로 생활터전을 옮겼다. 이 문제로 아내와 불화가 생겨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농협 상주시지부 산하 12개 농협이 집계한 지난 달 말 현재 정책자금 영농자금 등 농가부채는 3천500억원에 달한다. 농가당 부채는 1천500만원 규모.

부채규모가 차이가 있을 뿐 빚이 없는 농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상주시 낙동면 상촌리 김모(45)씨는 지난 해 이웃에 2천만원 빚보증을 서줬다가 재산압류 통보를 접수,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농협의 영농자금을 대출, 남의 이자를 대신 갚고 있다.

연대보증에 따른 농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자 상주농민회는 지난 9일 지역 12개 농협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부실채권에 대한 경매조치만을 유보토록 요구하는 건의를 내기도 했다.

▣구미·칠곡

구미시 인동동에서 농사를 짓고있는 박모(45)씨는 지난 97년 아내몰래 논 1필지를 담보로 농협에 2천만원을 대출, 친구 박모씨에게 빌려줬으나 경기불황으로 친구가 돈을 갚지 못하자 농지가 경매될 위기에 처해 아내와 가정불화가 계속되고 있다. 비난 박씨뿐만이 아니다. 구미시 오태동 하모씨가 마을 사람들에게 보증을 부탁, 4천만원을 대출받아 도박, 유흥비로 탕진, 가족을 남기고 잠적하는 바람에 보증인들이 재산을 압류당해 마을전체가 쑥대밭이 되기도했다.

또 부동산 경기침체로 농지매매거래가 끊기자 돈이 필요한 동네 사람들끼리 상호연대보증을 섰다 파산위기에 내몰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칠곡군에서 농사를 짓는 신모(51)씨는 지난 해 초 마을주민 이모(49)씨에게 농협 정책자금 5천만원 대출을 위한 부탁을 받고 보증을 섰으나 이씨가 이 자금을 농사 대신 주유소사업에 활용했다 최근 부도를 내 보증채무에 시달리고 있다.

신씨는 "상당수 농민들이 자금대출을 할때 맞보증을 서는 경우가 많아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기 힘든 실정"이라며 "보증채무로 농촌 인심이 피폐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칠곡축협의 경우 보증채무로 법적절차가 진행 중인 농민들만도 50여명에 이르고 있다.

김천 농협지부관내 농가부채 역시 3천810억원으로 호당 부채가 1천900여만원에 달하고있다.

▣경주·영덕·울진·울릉

1천300여명 조합원으로 구성된 경주시 감포농협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주지역에서 알찬 농협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2년전 농협장 최모(48)씨가 농민들 모르게 명의를 도용, 59억원을 편취하는 바람에 마을 농민 상당수가 검찰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

이름을 도용당한 200여명이 조사를 통해 억울함을 밝히기는 했지만 40여명은 채무자로 아직 남아있다, 게다가 경영부실로 막대한 손해를 입은 감포농협은 결국 지난 달 인접 양북농협에 흡수통합,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있다.

울진군 최모(53)씨 역시 축협직원의 인감 도용으로 1천만원을 고스란히 물게 돼 거의 매일 술독에 빠져 지내다시피 한다.

지난 94년 집안일로도 축협에 2천만원 담보대출을 하던 중 직원 장모(42)씨가 약정서가 잘못됐다며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재요구, 자신을 속이고 1천만원을 추가대출했다는 게 최씨의 설명.

직원 장씨는 최씨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연대보증 채무를 떠넘긴 채 이미 잠적해버렸다.

영덕군 한 농협은 전체 대출 중 신용보증대출이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75%가 모두 연대보증인 셈이다. 농민후계자를 포함, 농민들 중 상당수는 농가부채규모가 1억원을 넘는 등 지불능력을 초과한 실정.

농협의 영농자금은 보증인 없이 1천500만원, 보증을 세울 경우 3천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보증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신용보증보다는 연대보증을 선호하고 있다.

농민들은 정부가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에 42조원이란 엄청난 예산을 투자했지만 남은 것은 농가부채란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정부시책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울릉도 섬마을의 따뜻했던 어촌 인심도 연대보증 파동으로 흉폐화되기는 마찬가지울릉읍에서 중형선 선주와 활어횟집을 경영해온 이모(54)씨는 과도한 부채로 자취를 감춰 피해자가 속출했다. 이발업을 경영하던 김모씨도 새마을 금고에 2천만원 보증을 서주다 고스란히 부채를 떠안게 됐다.

게다가 한일어업협정 등으로 어업소득이 감소되고 있는 가운데 연대보증피해가 속출, 농어민들의 시름이 더해가고 있다.

〈지방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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