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질 만능'과 '권력 지향'에 "경종"

'이제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이상 더 갈 수가 없었다. 아무도 더 갈 수 없는 것이다. 웃어 봐요! 장교는 요한 모리츠를 바라보며 명령했다. 웃어 봐! 그대로 웃고 있어'

70년대 후반 국내개봉된 영화 '25시'를 본 관객이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 앤터니 퀸이 억지로 지어보이는 어줍잖은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강요된 웃음뒤에는 13년동안 이유도 모른채 100여군데 수용소를 끌려다닌 주인공 요한 모리츠의 인생유전이 서럽게 녹아있다. 도저히 웃지못할 기막힌 삶을 살아온 한 남자의 허탈함과 분노가 미소뒤에 깔려 있다.

1940, 50년대 세계문학의 시간표를 들여다보면 독자들은 콘스탄트 비르질 게오르규와 조지 오웰이라는 두 작가와 조우하게 된다. 49년에 발표된 '25시'의 작가 게오르규와 '1984년' '동물농장'의 작가 오웰이다.

게오르규(1916~92)는 루마니아태생의 신부이자 시인, 소설가였다. 부카레스트대학과 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그는 40년 루마니아왕국 시인상을 받는등 시인으로서 문학인생을 출발했다. 44년 소련군이 루마니아를 침공하자 46년 망명, 프랑스에 정착한 그가 작가로서 세계적인 각광을 받게된 것은 49년 '25시'를 발표하면서부터. 정치적인 이유로 본국에서 작품출간이 불가능해 파리에서 프랑스어판으로 첫 선을 보였다. 책이 나오자마자 프랑스 출판계에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2차대전후 암울한 유럽 사회상을 그린데다 작품이 지닌 정치적인 의미때문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소박한 젊은 농부 요한 모리츠의 삶은 한마디로 시대의 아이러니이자 비극이었다. 아리안족이면서도 유태인이라는 누명을 쓴 그는 약소국가, 약소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끝없는 고난을 되풀이 당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기술만능주의에 빠진 문명에 의해 희생당하는 한 개인의 비극 나아가 인간존재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서구문명의 종말을 고하는 하나의 경종일지도 모른다. 그는 억압적인 체제와 획일주의, 물질만능사상에 빠져 상실되어가는 인간고유의 가치를 탐구해온 전후 문학의 주춧돌같은 작가였다. 대표작 '25시'와 후편격인 '제2의 찬스' '키랄레사의 학살'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문학세계는 소외당하고 천대받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참모습을 돌아보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스정교회 신부로서 결혼한 신부가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인 '몽세니에르'(총주교)였던 그는 74년이후 모두 여섯차례나 한국을 방문하는 등 한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기도 했다. 46년 루마니아 외무성특파 문화사절 수행원으로 파리를 여행중 망명한이후 줄곧 파리에 살다 92년 6월 7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영국소설가이자 비평가, 수필가로 40년대 유럽문단에서 필명을 날렸던 조지 오웰(1903~50)은 인도 벵골지방 모티하리에서 세무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사히브(식민지시대 인도인이 유럽인을 부르던 경칭)였다. 본명이 에릭 블레어였으나 이스트 앵글리아의 아름다운 오웰강에서 따와 평생 필명으로 썼다.

올더스 헉슬리가 교사로 있던 이튼학교를 졸업한 그는 22년 인도 제국경찰관으로 미얀마에서 5년동안 근무하기도 했다. 어릴때부터 간직해온 작가에의 꿈은 그를 모범적인 제국의 충복에서 유럽의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삶에 몰두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미얀마체험을 바탕으로 쓴 처녀작 '버마의 나날들'을 통해 억압적이고 부정직한 사회환경과 싸우는 양심적인 개인을 묘사해 새로운 작품유형을 만들어냈다. BBC기자로 활동하기도한 오웰은 스페인내전을 취재하러 갔다가 공화국 의용군에 가담해 전투를 벌이다 부상을 입기도 했다.

오웰이 작가로서 본격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45년 러시아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 '동물농장'을 출판하고서부터다. 번뜩이는 기지와 공상, 뛰어난 문체로 그의 대표작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49년에 출판한 반유토피아소설 '1984년'의 유명세는 '동물농장'을 뛰어넘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그의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1984년'은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라는 20세기의 두가지 위협에 대한 성찰이자 경고였다.

적대적인 전체주의 경찰국가들에 의한 세계지배라는 가상적 미래를 설정한 이 소설은 권력지향과 타인에 대한 지배는 결국 모든 인간의 미덕을 서서히 매수하고 소멸시키며 국가는 끊임없는 감시와 부정직을 잉태하는 모체로 보고 있다. 전체주의의 가상적 위험에 대한 그의 경고는 동시대 사람들과 후세의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또한 소설의 제목과 소설구절들은 현대정치의 폐해에 대한 격언이 될 정도로 유명하다. 문학적, 정치적 반항아였던 조지 오웰. '동물농장'출판수입으로 구입한 헤브리디스제도 주라섬의 외딴집에서 집필생활을 했던 그는 결핵을 앓다 1950년 1월 런던에서 사망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