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민 떠나는 포구 동해안, 그 시름의 현장(3)울진

신 한.일어업협정 이후 동해안 수산물 가공업체들 대부분이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홍게 등 수산물을 가공해 일본 등지에 수출해 온 이들 업체들이 한.일어업협정 체결로 원료난을 겪으면서 도산위기에 처해 있는 것.

17일 오전 울진 후포에 있는 ㅅ실업.

200여명의 종업원들이 게살을 생산, 연간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던 이 업체는 지난주부터 수입 연어가공으로 가공어종을 바꾸었다.

원료가 부족, 게살 생산은 할 수 없지만 종업원들의 일손을 놀릴 수 없어 연어 가공이라도 하기 위해서다.

현재 이 회사의 가동률은 60% 수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동률이지만 그나마 인근 다른 업체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

같은 날 오후 인근 ㄷ수산.

여느 때 같으면 숨 고를 틈도 없이 바쁠 시간인데도 기계소리는 고사하고 인기척조차 없었다. 마치 연휴를 연상케 할 만큼 썰렁한 분위기. 공장에는 시설물을 지키는 관리인 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관리인은 "원료가 없어 가동을 일시 중단하고 있다"고 했다.

홍게잡이는 3월에서 6월 사이가 최대 성어기.

홍게잡이와 가공, 그에 따른 관련업이 후포를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어선들이 4∼5일씩 걸리는 조업을 마치고 입항할 때면 후포항 전체가 술렁인다.

그러나 지금, 원료가 없다보니 업계 자체가 개점 휴업 상태다. 부분조업을 하고 있는 몇몇 업체들도 가동률이 50%를 훨씬 밑돌고 있는 수준이고 잔업, 특근은 사라진지 오래다.

사정이 이러한 만큼 우려되는 것은 대량 실직 사태. 근로자들 사이에는 언제 회사를 그만둬야 할 지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또 수산물 가공 업체가 침체 국면을 맞다보니 투자자가 나서지 않는다는 것.

울진 북면의 오징어 조미 업체인 ㅎ산업이 대표적인 예.

지난해 하반기 만성적인 자금난으로 적자경영에 허덕이다 어획 부진과 채산성마저 떨어지면서 결국 도산한 이 업체는 법원 경매에 넘겨져 4차례나 유찰, 최초 설정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헐값으로 떨어졌지만 매입자가 나서질 않고 있다.

이와같은 사정은 울진의 0식품, ㄱ수산, 영덕의 0수산, ㅎ해연 등 최근 부도가 나 경매에 나온 업체들도 마찬가지.

후포수협의 김정우 상무는 "IMF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어업협정이란 악재가 겹쳐 수산업 기반이 붕괴,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진 만큼 저가의 물건이 나와도 눈독을 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선주들이 어선 매각에 나서고 있는 만큼 원료난은 더욱 가중될 것이 예상, 대체품목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도 여의치 않다. 시설설비를 바꾸는 등 전업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

또 지금껏 일본 바이어들의 주문생산에 의존, 해외판로에 백지상태인 점도 품목개발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울진.黃利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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