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와 관계없이 수입업자 스스로 필름에 가위질을 해대는 바람에 영화를 '불구'로 만드는 예는 비일비재하다.
가까이는 '제5원소''히트'에서부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아이다호'까지 러닝타임에서 1시간씩 뭉떵 잘라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5분이면 멜로영화를 SF영화로 만들 수 있는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1시간씩 잘라대는 그들의 저의는 무엇일까.
지난 97년 오리지널 상영시간 2시간짜리인 '제5원소'를 1시간 52분으로 잘라 개봉한 수입사(삼성영상사업단)의 변명은 걸작(?)이다. "중학생 이상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 선정적인 장면을 들어냈다"는 것.
'혹 못 보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자칫 관객들이 지루해 할까'. 빤한 상업주의(상영횟수를 늘려 수입을 늘리려는)를 그들은 '관객에 대한 배려'로 치장하며 무소불위의 가위를 휘둘러댔다.
특히 섬세한 연출이 요구되는 예술영화의 경우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예술영화일수록 가위질이 더욱 힘차고 강건(?)했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누린 프랑스 레오 까라감독의 '퐁네프의 연인'(91년). 시력을 잃어가는 화가 미셀과 떠돌이 알렉스가 퐁네프 다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영화로 줄리엣 비노쉬와 드니 라방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특이한 러브스토리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250억원의 제작비에 5년이란 긴 시간을 투자한 것은 단순한 러브 스토리의 완성이었을까. 감독의 연출의도는 유럽의 앞날에 대한 불안한 진단과 우려였다. 당시는 유럽통합이니 뭐니 해서 유럽이 뒤숭숭하던 때였다.
그러나 국내 개봉에선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라 할 수 있는 도입부 6분이 잘려나갔다. 알렉스가 생활하던 부랑아 수용소 장면을 통째 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알렉스의 신원과 성격, 프랑스의 오늘에 대한 감독의 생각 등이 사라졌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이 장면은 장 비고의 비극 '애틀랜타호'를 패러디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며 "유럽의 문제가 유럽통합으로 해소될 수 있는가 하는 감독의 질문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수입사의 임의삭제 이유가 '지저분했기 때문'이란 점에서 그들의 '끝없는 무지'가 또다시 국내 영화팬들을 경악케 했던 영화였다.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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