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련의 한·일 어업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실책들은 관계당국자들의 무능과 시대착오적 행태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제적 협상외교의 측면에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는 어민들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들에게 커다란 실망과 좌절을 안겨 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협정의 체결과정에서 발견되는 많은 실책들을 솔직히 인정하고, 미래를 위하여 의미 있는 교훈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무엇보다도 가장 큰 교훈은 새로운 해양질서의 형성에 부응하는 능동적이고 현실적인 해양외교의 추진이다. 이미 1994년 11월 유엔해양법협약이 발효됨으로써 기존 어업질서의 개편은 예고되고 있었다.
더욱이 1996년에는 한·일 양국이 이 협약을 비준하였고, 1997년 11월에는 이 협약이 정하고 있는 새로운 배타적 경제수역(EEZ)제도에 따른 중·일간 잠정어업협정이 체결됨으로써 한·일간의 협정갱신도 필연적이었다.
따라서 일본은 유엔해양법의 발효와 더불어 협상을 위하여 치밀한 준비를 해왔는데 반해, 우리는 논의 자체가 이로울 게 없다는 생각으로 협상에 소극적이었고, 구체적 대응전략을 마련하지 못한채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다. 준비 없는 세계화가 IMF사태를 초래하였듯이 준비 없는 한·일 어업협상은 국익과 국위의 손상을 초래할 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협상의 실패는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과감한 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도 가르쳐주고 있다. 이번의 협상과정에서 국민들을 더욱 분개하게 만든 것은 해양수산부 실무자들의 무사안일한 태도였다.
이들은 우리 어선들의 업종과 출어기, 어획량 등 조업실태를 전혀 모른채 실무협상에 임했기 때문이다. 당초 협상에서 쌍끌이와 복어채낚기 조업이 누락되어 일본에 구걸하듯이 재협상을 하였으나 아무런 실익 없이 끝나고 말았다.
반면에 일본 당국자들은 어민들의 요구사항을 일일이 수렴하고 현장을 실제로 탐사한 뒤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협상에 임했다.
따라서 협상의 참패는 당연한 결과였으며, 이는 관료주의와 탁상행정의 병폐를 제거하기 위한 근본적 수술이 필요함을 뜻한다. 장관 한 사람의 사퇴만으로는 뿌리 깊은 관료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치유할 수 없다.
시대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경쟁력과 경영마인드를 갖춘 민간전문가들을 적극 발탁, 활용함으로써 관료조직에 변화와 혁신의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한다.
한편 이번 협상의 실패는 향후 독도의 영유권과 관련한 EEZ의 경계획정문제에서 동일한 실책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교훈을 주고 있다.
이번의 어업협정은 독도문제로 양국간의 해양경계 획정이 사실상 어려운 상태에서 새로운 해양질서 구축을 위하여 잠정적으로 체결한 것이다.
독도문제를 남겨 두고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어업과 EEZ 경계문제를 분리하여 중간수역을 설정하였으며, 그 결과 이번의 협정에서 독도는 중간수역에 위치하고 있다.
비록 중간수역이 어업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독도의 영유권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더욱이 현재 일본의 관료와 학자들은 독도와 관련한 자료들을 치밀하게 준비하면서 후일을 기약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향후 완전한 EEZ획정시에는 반드시 독도가 우리측 EEZ내에 포함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며, 이를 위해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에 보다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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