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사는 외국 상인들은 동안(東岸)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무역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그런 탓으로 그 나라의 공무원들과 자주 접촉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들은 가끔 그 나라 공무원의 부패정도를 지수로 발표하기도 하고 그 순위를 매기기도 한다.
이번에는 그 부패정도의 순위를 매겼는데 한국 공무원들이 5위에 끼여 있었다. 곧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 베트남 한국의 순위라는 보도였다. 이런 일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1위나 다름 없다. 위 네나라는 땅덩이나 인구로 따져보면 모두 한국보다 큰 나라들이다. 하지만 공무원 개인 소득에 비추어보면 한국보다 훨씬 뒤쳐진다.
물질의 윤택은 부정의 소지를 줄여준다고 사회학자나 행정학자들은 말한다. 그런 점에서 공직자의 보수를 높게 책정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어쨌든 이것은 한국 관료사회의 실정대로라면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기업가나 외국의 무역업자들은 접어 두고라도 모든 국민들은 이를 현실생활속에서 피부로 느껴 왔으나 그 지수를 비교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필자는 한국사를 쓸 때마다 예전 공직자의 부패와 비리를 어떤 표현과 방식으로 기술할 지 늘 고심해왔다.
아다시피 과거제도는 고려 초기에 실시되었다. 후기 신라시대 귀족들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다른 신분층이 끼어들 기회를 주지 않았다. 과거시험은 천민만을 제외하고 누구나 응시해서 실력에 따라 합격하면 벼슬을 주었다.
이는 중세사회에서 획기적인 인재등용책이었다. 물론 과거에 합격했더라도 그 신분에 따라 출세의 정도는 달라졌다.
과거제도는 8백년 넘게 유지되었다. 비록 고위 관직의 자제들이 불법의 방법으로 특혜를 누렸으나 그 기조는 흔들림이 없었다. 마침내 권문세가의 자제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과거 합격자를 독점하다 시피하자 과거제도의 철폐를 들고 나왔다. 그래서 19세기 말기 이를 폐지해버렸다.
그러나 인재등용 방법에 원칙이 없어져 더욱 부정을 조장했다. 일제는 식민통치를 수행하면서 고등고시와 보통고시라는 이름으로 이른바 공직자를 뽑아 총독부나 지방에 배치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너무 적어 정실이나 친일파 인사를 골라 하급 공직자로 배치했다. 교묘한 식민지 인사정책이었다.
해방후에도 한동안 식민지시대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했다. 그래서 배경이 있는 인사나 친일파출신들이 공직사회의 주류를 이루었다. 1960년대 모든 하급 공무원을 공채로 뽑았다.
이런 공채의 임용 정책은 모든 회사와 자격시험에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몇 십년동안 가장 부정의 소지가 적은 곳을 꼽으라면 공무원 시험과 대학입시일 것이다.
공채시험을 거쳐 임명된 하급 공무원들은 이 사회의 인재들이었다. 합격하면 배경과 로비가 작용했으나 시험과정에서는 결코 부정이 거의 작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부패하고 말았는가? 공직자들이 역대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개발도상에서 물질위주의 가치관이 공직자의 사명감과 윤리의식을 마비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또 역대정권이 업적주의로 조자룡 헌칼 쓰듯 한번씩 "부정 부패의 척결"을 들고 나왔다가 슬그머니 거두어 들이는 작태도 공직자의 무사안일주의를 부추겼을 것이다.
우리의 앞날은 공직의 사명감과 윤리 의식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암담하다.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21세기에는 선진대열에서 뒤처질 것이다.
먼저 공직자 스스로가 명예를 되찾는 의식의 전환이 요구되며 국민들은 영합보다 감시의 역할을 해야할 것이며 정부는 가능한 한도에서 보수를 올려주고 엄중한 의무와 책임을 따져야 할 것이다.
근래 공직자의 공복의식이 높아가고 있다는 여론이 있으나 더욱 박차를 가해 진정한 공직자의 상을 만들어 가자.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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