選惡說과 選善說
오죽 했으면 선거를 놓고 이런 농담이 유행 할까. "맹자(孟子)는 성선설(性善說)이고 순자(荀子)는 성악설(性惡說)인데 정자(政子)는? 학자(學子)는?" 하는 농이다.
물론 모를 것이다. 그런 학자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있단다. 혐오대상이 되어버린 정치꾼들을 뜻하는 '정자'에게 선거는 악의 상징이므로 '선악설(選惡說)'이고 현실을 모르면서 연구하는 사람을 일컫는 조어(造語)인 '학자'는 선거는 선의 상징이므로 '선선설(選善說)'이 정답이란다.
우리나라에서 선거는 축제의 장이 아니라 갈등의 장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금권 관권 폭력은 기본이고 우리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한 요인인 정경유착도, 지역을 갈라놓는 지역갈등도, 법이란 이름으로 법집행이 공정하지 못한 법의 폭력도, 다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소수와 약자의 정의는 무시 해버리는 다중(多衆)의 폭력도 모두 선거에서 비롯 된 것들이다.
우리 정치가 새 시대에 맞춰 진화하지 못하고 구태의연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모두 선거에서부터 잘못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오죽했으면 정치인 스스로 민주주의 하는 나라에서 선거를 부정하는 재·보선무용론을 내놓았을까.
역사의 후퇴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선거 해악(害惡)이 있다. 그것은 선거를 의식해 마땅히 해야 할 개혁정책을 포기해버리거나 연기해버리는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이다.
여기다 정책 실패와 인기주의마저 가세 한다면 이는 바로 선거망국론이 된다. "내년 총선도 생각해야지"하는 한마디로 46억원이나 들인 정부조직개편은 유야무야 되어버렸고 읍면동 폐지는 백지화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행정 개혁모델은 대체로 영국이다. 자문에 응한 영국의 행정개혁전문가 다이애나 골드워디여사도 "정부개혁 없이 사회경제 발전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국민정서도 정부개혁이 먼저다. 그런데 정부는 근로자만 울려놓은채 공직사회의 동요만 의식하고는 정부개혁을 사실상 미뤄 버린 것이다.
그리고 교육자치제도 '민감하고 파장이 큰 사안'이라는 이유로 내년 총선이후로 미루어 버렸다. 오는 7월1일부터 실시하기로 했던 의약분업은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의 반발에 눌려 그 시행을 1년간 연기했다. 결국 시행되기는 했지만 국민연금확대실시도 '준비부족'이 아닌 선거영향을 이유로 연기가 논의 되었었다.
왜 개혁은 하는가.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적자생존의 투쟁 때문이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멸망하게 된다. 마찬가지 논리로 시대환경이 산업화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바뀌었으므로 거기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추어야 살아 남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개혁을 미뤄버리면 언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 할 것인가. 남미 경제가 오늘날 위기에 빠진 것도 모두 개혁을 미룬 80년대의'잃어버린 10년'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로저노믹스의 교훈
오늘날 뉴질랜드는 세계가 알아주는 개혁성공 케이스다. 개혁을 통해 나라의 경제위기를 구한 것은 84년 집권한 노동당정권이었다. 로저노믹스로 대표되는 로저 더글러스(84~88년)라는 재무장관이 활약하던 시기도 이때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노동당이 공무원의 반발 등 개혁으로 인해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혁을 계속했다는 점이다. 결국 90년 정권을 국민당에게 넘겨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계속 했다는 것은 정권연장보다는 국가발전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행했다는 것을 뜻한다. 뒤를 이은 국민당 정권도 노조의 반정부시위 등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인기를 의식하지 않은 개혁을 계속 했다는 점 또한 감동적이다.
이러한 정권안보를 의식하지 않는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개혁 교과서인 뉴질랜드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기에 연연하다 나라를 망친 많은 정치지도자를 본다. 아르헨티나의 페론대통령 등이 이들이다. 그러나 "위기에서는 합의의 정치는 안되고 신념의 정치라야만 한다"는 영국의 대처총리나 "정치인은 누구나 개혁을 피하려 한다"고 경고하는 로저장관같이 인기를 버린 지도자들은 성공하고 있음도 본다.
더 이상 선거를 의식해 개혁을 미룬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논설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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